"사유재산에 정부회계기준 적용은 잘못"

정부가 최근 개정한 유치원어린이집 등 유아교육기관에 대한 재정지원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의도로 최근 개정·공포된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투자비 회수와 수익성 등을 경영측면을 무시한 비현실적인 내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교육부는 사립유치원 등 유아교육 재정지원의 투명성과 공익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으로 지난 2월 24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오는 9월1일부터 전면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그동안 유아기의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 경감을 위해 만 3~5세 공통 교육?보육과정(누리과정)을 도입하여 전 계층에게 유아학비·보육료를 지원(2016년 12조4360억 원)해온 반면, 이에 걸맞은 사립유치원 재무회계 운영 제도가 정비되지 못해 사립유치원에 대한 공익성과 재정 투명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며 규칙 개정의 배경을 밝혔다. 교육부는 “이번 규칙 개정을 통해 공통과정지원금, 보조금 및 수익자부담수입으로 세입재원을 명확히 구분하고 세출에서는 노후시설 증·개축을 위한 건축적립금의 감가상각비를 인정하여 노후시설 환경개선 및 안전강화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설명과는 달리 일선 유치원 운영자들의 주장은 “개인의 사재를 투입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들에 재정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행정적인 절차에 적용하는 회계방식 등 정부회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합당하지 않고,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을 정부의 교육지원금을 횡령하고, 온갖 탈법을 일삼는 못된 사람들로 낙인찍은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유아교육전문가들은 24일 서울 여의도 침례교회 글로리아홀에서 열린 ‘한국유아정책포럼’제1차 세미나 ‘유아교육 발전을 위한 사립유치원의 건전한 육성방안’에서 “정부의 잘못된 유아교육정책을 바로잡고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연구와 정책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전국 사립유치원 관계자 등 교육전문가 300여명이 참석해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했다.

한국유아정책포럼은 유아교육 정책의 수립과 평등한 유아 교육을 이룩하기 위한 정책발굴 및 제안을 목적으로 지난 7일 창립됐다. 창립 취지문에서 이 포럼은 “국가 주도의 불평등하고도 불균등한 정책을 타파하고 교육재정 지원과 경영 통제 등에 의해 발생되는 다양한 사회 현상들을 재조명하며, 올바른 여론 수렴과정에 의한 유치원 경영 정책 제안, 사립유치원의 정체성 확립, 유아교육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는 기능과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 첫 발제자로 나선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이 의사나 법률가보다 더 정확한 진단과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교육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방식은 막을 내린 것”이라며 “과거의 지식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고 인간에게 가장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변화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나이가 들면 지식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삶의 태도에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유치원이 중요하다”면서 “이제 유아교육은 우리의 미래세대가 4차 산업혁명 속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사명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유아들에게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자면 먼저 유치원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아이들의 취향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다양한 수업료를 받는 사립유치원이 국공립유치원보다는 교육비가 비싸지만 질높은 교육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한국의 사립유치원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유아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며 그 역할을 잘 해왔으나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유치원비가 높다는 비판과 온갖 비리의 온상인 것으로 지목되는 것은 대부분 자영업으로운영되던 곳에 법인회계 방식을 강요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납세자들이 부담하는 숨은 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국공립유치원이 사립보다 최소 50% 이상 유치원비가 더 높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김 교수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학부모의 선택을 돕기 위한 정보 공시와 폭력 등을 단속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좋다”면서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언론보도만으로는 사립유치원의 소유자가 유치원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으로 보인지만 사립유치원은 설립자의 사유재산이며 소유자는 자신들의 재산을 정당하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에 따라 김 교수는 사립유치원이 사립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립유치원의 학부모에 대한 보조금인 바우처(아이사랑카드)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사립유치원의 교육과 회계에 대한 통제를 하는 것은 바우처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유아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위해서 사립다운 사립유치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내용을 통제하는 바우처를 안 받겠다는 사립유치원에게는 자율형(가칭)사립유치원을 허용하라 ▲회계규제가 사립유치원의 자율성을 해치고 교육획일화를 초래하므로 새로운 회계제도에 적응할 유예기간을 줄 것 등을 요구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성섭 강동대 교수(유아교육학 박사·한국유아정책포럼 부회장)는 “교육부가 회계 투명성을 요구하는 요인으로 들고 있는 재정 지원도 학부모에 대한 지원이므로 사립유치원에 대한 재정지원을 아니고, 차입금 적립금의 허용도 실제로는 허가사항 등으로 제한해 금지하고 있는 점 등으로 일선 유치원들이 시행을 받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사립유치원의 회계와 영리성과 관련해서는 “설립시에 투입된 자원은 개인의 순자산일 수도 있고, 부족분은 차입으로 조달할 수도 있으므로 이자 비용이나 기회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운영시에도 인건비 등 필요경비를 포함한 적정 잉여가 필요하며, 장기적인 시설의 보수나 재건축 등을 위한 적립이나 충당금 등도 필요하다”면서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사립유치원들은 생계형이 많으며, 적정 생활을 위한 일부의 영리는 발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서 임재택 부산대 교수는 “2004년 유아교육법 제정시 충분한 내용을 담지 못함에 따라 여러 문제점이 내재됐다”고 지적하고, “현재 사립유치원이 요구하는 주장과 내용은 자연법(순리)과 양심법(도리)에서 볼 때 타당하다고 여겨지며, 이 역시 자연법과 양심법에 따라 해결돼야 한다”해법을 제시했다.

백종섭 대전대 교수(행정학)는 “사립유치원은 교육의 순수성과 사업의 가치 사이에서 오는 양면성이 혼재한다”면서 “행정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사립유치원의 특성을 인정하고 학부모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으면 되며, 사립유치원의 자율권에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정부의 획일적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병길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사립유치원 현안문제 타개를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여론전이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므로 중장기적인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사립유치원 전용의 재무회계규칙 제정을 통한 자율회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사무차장을 지낸 이 고문은 이를 위해 “사유재산 출연에 따른 사유재산 보장과 관련해 과도한 규제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지 여부를 가려줄 것을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재복 오성회계법인 부대표는 “사립유치원 또한 사교육에 가까웠으나 공교육으로 전환되는 과정(국가지원)에서 문제가 발생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공립교육기관(99만원)의 50% 정도밖에 지원되지 않는 사립교육기관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영숙 두원공대 겸임교수는 “헌법 31조1항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공립교육기관에 비해 적은 지원금을 받는 사립교육기관들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공사립교육기관 균형발전을 위해 공평하게 지원해줄 것을 요구한다”며 “사립유치원이 아무리 비영리 기관이라 해도 설립자가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문제 있다”고 비판했다.

진상원 한국유아정책포럼 정책위원장은 “현재 사립유치원의 경영자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마치 교육부의 직원이 된 느낌”이라고 문제를 토로했다. 진 위원장은 “사립유치원장은 교육자 이전에 경영자이어야 한다”면서 “유치원에 근무하는 교직원들에게는 유치원이 그들의 직장으로서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경영자의 마인드가 우선되어야 유아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고, 교사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경영자로서의 책임을 상기시켰다.

이날 이덕선 한국유아정책포럼 회장은 인사말에서 “사유재산인 유치원에 대해 정부가 초중고교에 적용되는 공립법인용 회계규칙을 잘못 적용한 결과”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나라 유아교육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사립유치원들이 공로를 인정받기는 고사하고 온갖 탈법을 일삼는 못된 사람들로 낙인찍혔다고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회장은 “저출산으로 우리나라 유아들이 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원한다는 핑계와 공공성은 국공립기관에 의해서만 달성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국공립유치원을 증설해 사립유치원의 폐업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은 앞으로 한국유아정책포럼은 “정부정책에 대한 질 높은 대안을 개발하고, 정부의 부당한 통제위주의 정책과 잘못된 언론보도에 적극 해명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서울=이득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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