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똥 꿈을 자주 꾼다. 그래서일까? 해몽처럼 인생도 그럭저럭 잘 풀리는 편이다. 변소가 지독하게 싫었던 어릴 적 기억 덕분인 것 같다. 동생들이 기저귀를 떼고 처음으로 똥을 눌 때 마당가에서 일을 보게 했다. 메리라는 이름의 누런 똥개가 곁에 있다가 그것을 덥석 물었다. 우리 칠 남매는 그렇게 마당에서 똥을 누었다. 변소를 드나들기에는 위험하다는 판단으로 마당에서 똥을 누게 하고는 삽으로 쳐내어 두엄 탕에 던지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알만한 나이가 되어 변소에 들어갔지만 발판으로 올려놓은 송판이 삐걱거려서 똥통에 빠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벽을 붙들고 겨우 일을 보고는 했다. 어떤 때는 하얀 구더기가 스멀스멀 거리며 기어 다니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단단한 시멘트 발판을 디디고 똥을 눈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엄청나게 깊은 그곳을 쳐다보면 아찔하기만 했다. 지금도 꿈을 통해 그런 기억이 자주 되살아난다.

 결혼하여 시골에서 살다보니 아이들에게도 요강을 사용하게 하거나 마당에서 일을 보게 하였다. 어릴 적부터 수십 년간 달라진 게 없었던 화장실이 언제부터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빠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불쾌하거나 더럽지도 않았다. 집집이 화장실을 개조하였다. 생애 처음으로 집을 샀을 때, 수세식 변기가 있고 그 안에 세면대와 욕조가 있는 화장실이 너무 좋았다. 처음으로 화장실에 작은 화분을 들여놓았다. 큰 거울 앞에서 로션을 바르며 뒷간에서 화장할 수도 있다는 것에 가장 큰 수혜자처럼 기뻐했다.

 이 건물에 입주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각 층에 한 개의 남녀 화장실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화장실이 더러워지고 있다. 마음먹고 새벽에 출근했다. 두어 시간 머리가 헝클어지도록 화장실 문에 매달렸다. 10년 전부터 그곳에 붙어있던 자국들이 완고하게 버텼다. 몇 번을 반복해가며 스티커제거 스프레이를 뿌리고, 긁었다.

 고약한 화학약품 냄새만 진동할 뿐 요지부동이었던 자국들이 서서히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4개의 화장실에 도배하듯 붙어있던 스티커를 제거하고 나니 마음이 말끔해졌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미안해하시며 칭찬을 해준다.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더럽게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다쳤던 마음이 조금은 치유되었단다. 혼자서 8층 건물 청소를 하느라 '쎄가 빠진다'는 아주머니와 커피 한잔을 나누었다.
 
 백화점이나 호텔의 화장실에서 느꼈던 감동이야 바랄 수 없겠지만 정갈하고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하고 싶다. 청결한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화장을 고치고, 때로 '해우소'로 고민을 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위안인가. 언젠가는 이곳의 유흥업소가 모두 사라져 격조 있는 화장실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묵은 때를 벗겨낸 화장실에 화분 몇 개 장식했다. 오늘도 똥 꿈을 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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