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교사는 아무래도 단편소설가와 같다. 학급 아이들과 매일 지지고 볶는 생활을 하면서 같이 울고 웃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교사 고유의 몫이다. 아이들마다의 특성은 물론 작은 버릇까지도 다 파악하는 것은 교사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위수업에 충실하기 위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교재연구를 하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까 고민하는 것도 교사가 크게 앓는 병이다. 숱한 학교행사를 학생 눈높이로 치러야 하고 맡겨진 업무는 교육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또한 적어도 매년 2회 이상 이루어지는 교직원 발령 때는 떠날 동료를 붙들고 밤새도록 아쉬워하며, 본인의 경우에는 이를 악물어도 눈물로 송별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아이들과의 이별은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교문 밖까지 따라 나오는 붉은 눈시울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흐뭇해하는 것도 단편소설의 소재다.

 교감은 교육에 대해 새로이 치열한 고민을 하는 장편소설가와 같다. 학교 대내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교육적으로 고민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교사들의 숱한 요구를 교장에게 체에 걸러 건의하고 교장의 의중을 교사들에게 또 걸러서 반영해야 한다.

 교감은 교사 시절에 쓴 단편소설을 그냥 묶기만 해서는 안 되고 장편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야 한다. 교사 때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보이던 것들이 또 안 보이기도 하여 머리가 복잡해지며 몸이 무거워진다. 교장을 하지 않을 거면 교감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로 힘들고 외롭다.

 교장은 시인과 같다. 싯귀 한 구절 써 놓고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며 다음을 생각하듯 하게 되는 것이다. 자간과 행간에 많은 내용을 담아 놓고는 일일이 말하지 않고 교사들이 알아가는 것을 지긋이 바라볼 수 있다. 좀 다르게 해석하면 어떤가, 교육이란 다양성을 인정하고 계발하는 것 아닌가? 교사가 애달은 사연으로 학급을 운영할 때, 교감이 타는 심정으로 교사를 돌아볼 때, 교장은 느긋한 촌철살인으로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

 교사가 교감 흉내를 내면 교육의 나무를 살피지 못하고 교감이 교장 흉내를 내면 더 많은 나무를 못 보며 교장이 교사나 교감 흉내를 내면 숲을 보기 어렵다. 교사 시절에 단편소설을 제대로 쓰지도 못한 자가 교감이 되기도 하고 교감 시절에 장편소설을 제대로 쓰지도 못한 자가 교장이 되기도 하여 교직의 문학성을 훼손하는데 심지어는 교감을 거치지도 않고 교장이 되는 인사도 있으니 교직이 자꾸 천박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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