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그녀들과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시종일관 나의 시선은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흠칫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에 초점이 없는 눈빛인 듯 했지만 서늘하다. 체념한 듯 보였지만 증오의 가시가 온몸에 비늘처럼 돋아있다. 푸른 수의를 입고 무리를 지어서 걸어가는 그녀들의 모습은 자유로운 유영을 꿈꾸는 푸른 물고기들 같았다. 답답한 어항 속에서의 몸부림이 저항을 잃은 채 벽시계의 시침과 촉각의 리듬에만 온몸의 촉각이 반응을 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높은 담 안 그녀들만의 집으로 특별한 외출을 했다. 교화라는 글씨가 쓰여 진 명패를 목에 걸고 육중한 철문을 열어줘서 들어간 그곳은 여성 수용자들만의 공간인 청주 여자 교도소였다. 지역 문인 단체에서 연중행사로 백일장을 주최하고 시상식이 있는 날이었다.

낯설은 일반인들의 방문에 두런두런 수군대면서 바라보는 그녀들의 시선이 장마철 공기만큼이나 눅눅하다. 따듯한 미소라도 보내 주면서 눈인사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종종 걸음으로 서둘러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하고 그녀들도 또한 표정 없이 받아 주면서 나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는 눈치였다. 꽃무늬 실크 원피스가 그렇게 내 몸에서 거추장스럽고 무겁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비는 붉은 벽돌을 적시고 유리 창 문을 타고 주르륵 흐른다. 사연 많은 여인들의 눈물처럼 흐른다. 저들도 지난 어느 시간에는 누군가의 착한 딸이었고 다정한 엄마였으며 살가운 아내였으리라. 하늘만 보이는 높은 담장 안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며 꽃이 피고 지는 시간 속에서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창밖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하고 괜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저마다의 얼굴에는 책으로 엮어도 몇 권은 됨직한 사연들이 쓰여 있는듯했다. 폭행을 일삼던 남편이 없는 이곳이 제일 편하고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여자는 밤이면 밤마다 산수유 피는 고향을 꿈꾼다. 영문도 모르는 갓난아기는 푸른 수의의 엄마의 가슴팍을 헤친다. 빈약한 젖을 물고는 새근새근 잠이 든다. 그곳에도 천사가 있었다. 날개달린 천사를 이곳에 보내준 이유를 그녀들은 알고는 있을까!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누군들 죄인이 아닐까! 돌아오는 길에 절절한 기도를 한다. 살아가면서 알고도 지은 죄 모르고도 지은 많은 죄들을 주여! 백옥 같이 정결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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