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오랜 침묵의 시간 속에서 육중한 몸체를 드러냈다. 녹슬고 처참하게 무너진 선체는 반잠수선에 묶여 천천히 바다를 떠나고 있다. 긴 시간동안 거칠게 몸부림치던 파도의 절규 속에서 슬픔을 그리움으로 노랗게 애태우던 팽목항도 이제는 한 세월 속에서 상처를 보듬으며 쓸쓸히 역사 속으로 아물어 가야겠지!

 '흔들리는 하얀 파도를 타고 바람에 실려 내 다시 바다로 가리'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 휘날리는 갈매기의 날갯짓과 몸부림치며 거칠게 울어대는 파도의 부름에 아이들은 바다로 달려간다. 그들의 힘이었을까! 새파란 칼날 같은 이를 드러내며 거칠게 몰아치던 파도도 고요히 침묵 속에 들었다. 그리고 반잠수선 위로 거대한 물체가 힘겹게 인양이 되었다. 바다에서 잃어버린 행복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봄이 와도 봄인지 몰랐고 꽃이 피어도 예쁜지 몰랐다. 캄캄한 밤이 되면 별마저 반짝이는데 내 유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파괴된 선체 속에서 나오는 진흙투성이의 유품들 앞에서 다시 또 무너지는 견고한 하늘이여! 삼년의 시간은 해도 뜨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죽음이 배위에 있지만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 헤엄칠 줄도 모르고 막혀있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부른다. 그 소리 소리들이 귓전을 머물며 심장을 뚫고 애간장을 끊어낸다. '이제 어미 품으로 돌아 와야지!' 낮게 토해내는 어미의 절절함은 상처받은 영혼에게는 어려운 말이던가! 아 아 어찌하랴! 이 아름다운 청춘들! 봄날에 수줍게 피어오르던 꽃잎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들이여! 엎어지는 배 위로 한 장의 꽃잎처럼 낙화 한 그대들이여! 어느 누가 그대들을 다시 돌려 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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