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며칠 전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셔주었다.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자라나 하루가 다르게 산과 들이 연둣빛 신록이 어우러지기 시작하였다. 봄 가뭄으로 산불 발생도 우려되고, 저수지와 대청호 수위가 낮아져서 농사철에 물 부족도 예상되고 심지어 식수난을 겪는 곳도 있다는 방송을 보고 걱정이 되었다. 냇바닥이 보일 때는 우리 마음도 쓸쓸하고 허전했는데, 며칠 전 내린 단비는 냇물에 물이 넘실넘실 출렁이는 것처럼 우리 마음을 푸근하고 흐뭇하고 행복하게 하여 주었다.

 지난 주, 어느 중앙신문과 방송에 우리 고장의 미담이 소개되어 자랑스러웠다. 청주의 한 터널에서 양수가 터진 임신부를 태우고 달리는 구급차를 위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차량들이 일제히 길을 비켜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당시엔 퇴근 시간이어서 차량들로 터널이 꽉 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한다. 필자도 출·퇴근 무렵에 그 터널에서 여러 번 운전을 해보았기에 얼마나 극심하게 정체되나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곳이었다.

 지난 4일 오후 5시 40분쯤, 증평군 증평읍에서 어느 임신부의 양수가 터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는 분초를 다투는 임산부를 태우고 서둘러 청주의 병원으로 향했다. 급히 달리던 구급차가 상리터널에 접어들어 사이렌을 울리자 편도 2차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니……. 이 부근 출퇴근길은 상습 정체구간이지만 임신부를 위해 운전자들이 길을 터준 덕분에, 구급차는 25분 만에 병원에 도착하여 아기를 무사히 순산할 수 있었다니 참으로 다행이고 오랜 가뭄 끝에 단비 같은 반갑고 행복한 미담이다. 만약 운전자들의 성숙한 의식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있기에 아직은 살 만한 사회이고, 가뭄에 단비가 생명수가 되듯이 삭막하고 어수선한 사회를 정감 있고 반듯한 사회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에도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임원님들이 참신한 기획과 솔선수범해준 덕분에 충북수필문학회의 회장이란 중책을 맡고 처음으로 개최한 월례회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첫 모임이니 현수막을 걸자며 선물하고, 문학기행 계획을 잘 마련해준 부회장님들, 월례회 공문 등 많은 업무를 맡아 잠도 줄이고 주말에도 세심하게 준비해준 사무국장님, 카페에 모임 공지를 올리고 몇 번이나 문자로도 알려준 총무님, 적잖은 연령에도 입구에서 회비 수납 등을 흔쾌히 맡아주신 재무님…….

 이런 분들을 통해서 배려와 봉사와 솔선수범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었다. 불교에서 재물이 없더라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인 무재칠시(無財七施)의 교훈도 있듯이, 가정, 이웃, 사회, 국가에 단비 같이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고 환영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초인종 의인 고(故) 안치범 님처럼 자해이타(自害利他)는 지극히 어렵겠지만,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스스로 앞장서 실천하는 단비 같은 사람이 많아질 때 더욱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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