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요즘 사정이 있어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대로변을 여러 번 지나치다 보니 자세히 보게 되고, 또 노선이 복잡하여 잘못 타는 일이 많아 덕분에 시내 곳곳을 관심 있게 구경하고 있다. 학창시절 시내버스 통학을 했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운 면도 있지만 시내 곳곳마다 빌딩들이 높이를 자랑하며 몰라보게 변화하고 있음에 놀란다. 빌딩건물 중에서도 병원 건물이 눈에 띄는 것은 내 전공과 관련이 있어 그러하리라. 단순히 리모델링 수준이면 몰라도 신축에 가까운 병원까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돼 오던 모 호텔을 요양병원으로 개조하더니. 며칠 전에는 예식장도 병원으로 변종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과연 병원사업은 개설하여 대형화만 하면 호황을 누리고 계속 발전될 사업인가? 청주시내 중소병원 관계자를 만나 속사정을 들어보면 내부사정은 전혀 다르다. 열심히 하는데도 환자는 늘지 않고 매년 적자가 가중되고 있으며, 인건비 비중이 50-60%에 진입한 병원이 적지 않다. 진료를 위한 의사확보는 원래 어렵다 하더라도, 간호사마저 정부의 포괄간호서비스 시행 때문에 대형병원으로 빠져 나가고 있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경쟁병원이 규모를 확장하여 소위 경쟁력 있는 분야를 개설하고 홍보를 강화하고 있으니 좌불안석이다. 그래서 중소병원이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속으론 시름이 깊어지고 있으며 아프다. 몹시 아프다.
병원들 간의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며 서로 상생하는 방안은 과연 없는 것일까? 새 봄을 맞아 논과 들판에선 농부들의 일손이 점점 바빠지고 있다. 봄철에 싹이 트기 전에 과실나무 등에 가지치기를 매년 실시한다. 더 좋은 과실과 꽃을 많이 피우기 위해선 필요 없는 부분이나 부실한 가지는 과감히 잘라내고 싹눈이 좋고 튼실한 부분을 살리는 전지작업 말이다. 그런데 이 작업도 잘 알지 못하는 자가 함부로 또는 대충해서는 안 한만 못 할 수도 있으며 자칫 과실나무 전체를 죽일 수 있으니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병원 또한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경쟁력이 있다고 무리하게 영역을 확장 하는 것만 능사가 아닌 것이다.
현대 전략분야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버드대학교의 M. Porter교수는 경쟁우위를 위한 집중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특정세분시장에 집중하여 여기에 차별화된 또는 저가의 상품을 공급하는 전략이다. 즉 특정 세분시장의 고객에게 구체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줌으로써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포지셔닝(positioning)전략은 중소병원들이 눈여겨 볼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중소병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허리 역할을 담당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병원마다 상생의 방안을 마련하여 하루빨리 중소병원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