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내가 근무하는 대학 본관 4층 국제교류실에서 내려다보면 그리 넓지 않은 교직원주차장 둘레에 수십 구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가뭄 끝에 내린 단비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하루 이틀 사이에 꽃망울 터뜨렸던 벚꽃들이 지금 만발이 되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는 수많은 꽃 중에서도 유난히 벚꽃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벚꽃이 그냥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사랑스럽기까지 한다. 일본의 국화(國花)가 벚꽃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니 일생의 큼직큼직한 일들을 결단하고 시작해야 할 시기가 마침 벚꽃 피는 이 시기였기에 그 추억들이 벚꽃과 많이 얽혀져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먼 옛날, 내가 일본에서 대학교를 다녔던 수년 동안, 그땐 왜 사는 것이 그리도 힘들었을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다. 버블경제가 터지기 전, 1980년대 초의 일본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며 사회 전체가 들떠 있었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낭비와 문화적 퇴폐에 사람들이 서서히 회의와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 이렇다 할 인생의 목표도 없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그저 무섭고 두렵기만 했다.

 무슨 인생의 장난일까? 그러던 내가 지금 30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물론 순탄한 행로는 아니었다. 지금은 그나마 여건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 당시 아는 사람이 하나 없던 한국에서 그것도 일본사람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로 앞만 보고 아둥바둥 몸부림치며 달려왔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사이에 남몰래 눈물을 많이 흘리기도 했고 죽지 못해 살 수밖에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동안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뜨셨고 젊음이 조금씩 나를 떠나면서 하나둘씩 아픈 데가 늘어가지만 그래도 멀쩡히 살아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고 어느 새 나는 초로의 나이가 돼서 물끄러미 창밖의 벚꽃을 바라보고 있다. 그 벚꽃 밑을 학생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학기 초에는 늘 그렇지만 특히 입학한지 얼마 안 된 신입생들은 대학생활에 적응하랴 전공공부를 따라가랴 정신이 팔려서 머리 위에 활짝 핀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도 나왔지만 누구에게나 청춘은 가혹하리만큼 힘든 기간이다. 저 맑고 밝은 미소 뒤에 숨겨진 그들만의 아픔과 눈물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원한다면 곁에 함께 있어주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싶은데, 무거운 짐에 짓눌려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고개를 들고 무사히 사회라는 대해(大海)에 다다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데, 과연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되는 걸까? 내 나이 57세, 환갑을 3년 앞둔 이 봄날에 강의실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내 고민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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