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해보기나 했어?" 이것은 현대 그룹의 총수 돌아가신 정주영 회장이 자주 쓰는 말이다. 무슨 일이고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거나 힘들 거라고 할 때면 으레 이 말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1961년 정주영 회장은 오랜 슬럼프를 헤치고 미(美) 제5군단이 발주하는 군산 공군기지 활주로 포장공사를 따냈다. 그러나 시방서는 배처플랜드(batcher plant, 콘크리트 혼합설비) 사용을 요구하고 있었다. 오산 비행장 활주로를 포장할 때만 해도 배처플랜트 없이 믹서(혼합기)를 높은 받침틀 위에 올려놓고 콘크리트를 비벼서 화물 자동차로 실어다가 쏟아서 깔면 그만이었다. 이제 이렇게 인력에만 의존하던 원시적 공사 시대는 지난 것이다.

 그런데 배처플랜트라는 설비가 있다는 말은 더러 들어왔지만 정주영 회장 자신도 아직까지 배처플랜트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구경해본 일이 없었다. 어쨌든 배처플랜트가 있어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모양이니 만들어내는 도리밖에 없다. 그는 중기공장 담당상무 김영주를 불렀다. "김 상무, 배처플랜트 하나 만들어" "예?" "배처플랜트 말이야" "배처플랜트가 뭐하는 겁니까?" "아, 콘크리트 비비는 기계 말이야" "믹서기 말구요? 그 기계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내가 어떻게 생겼다고 설명하면 자네가 알아? 자네가 직접 가서 봐야지" 그리고 정주영 회장은 자리를 떠 버린다. 어려운 일일수록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것은 그가 부하 직원에게 일을 시킬 때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

 직원이 알아보니까 그때 마침 세종로에 있는 유솜(usom)빌딩을 미국 회사가 짓고 있었는데 국내에서 배처플랜트를 구경할 수 있는 데는 그 곳 뿐이었다. 그런데 담장을 너무 높였기 때문에 그나마 밖에서는 볼 수도 없었다. 담장 윗부분을 잡고 껑충 뛰어서 매달려야만 잠깐 훔쳐볼 수 있었다. 몇 번 그렇게 훔쳐보니까 대강 어떤 기계라는 짐작은 간다. 직원은 본대로 대강 스케치해서 들고 김 상무에게 설명했다. "아니 지금 이 그림을 보고 나더러 배처플랜튼지 배차플랜튼지 하는 걸 만들라는 건가?" "그럼 상무님이 한 번 직접 가서 보세요" "그러니까 담 너머로 훔쳐보라는 거야?" "그렇다고 어떡합니까. 상무님"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사람이 있을 거 아니냐 말야. 그러니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 술을 사 주든 뭘 하든 해서 날 그 안에 더도 말고 두 번만 들어갔다 나오게 해!" 그 후 미국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계장 한 사람을 교제한 직원은 두 차례 현물을 구경시켰다.

 김 상무는 기계 겉만 보고도 기계 속을 아는 기계 박사였다. 그는 마침내 미국 시방사가 요구하는 배처플랜트를 제작, 군산 비행장 활주로 공사를 착공하게 되었던 것인데 여기에서도 우리는 현대의 맹렬한 개척 정신, 좌우간 부딪쳐 보고 뛰어들어 본다고 하는 뛰어난 행동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미스터 실행력"에게는 공통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좌우간 뛰어 들어가 보는 용기"이다. 한번 내디디면 두 번, 세 번째는 저절로 이어지는 법. "미스터 실행력"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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