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알싸하고 달달한 봄 햇살을 따라 17개월 된 손녀를 앞세우고 걷는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뛰려고 하다가는 넘어지고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흉내를 내고는 자꾸 뒤돌아보며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한다.

 제까짓 게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저리 천방지축 나대는 것이다. 뒷짐을 지고 계속 따라오며 보호의 눈길을 보내는 할아버지에 대한 전적인 믿음, 그게 없이는 불가능한 동작이다.  자기의 온몸을 맡기는 신뢰를 보내기에 꽤 높은 곳에서 서슴없이 뛰어내리기도 한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 어떤 때는 한눈을 팔다가 미처 정확히 받지 못하면 여기저기 다치기도 하는 것이어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지만 그건 오로지 할아버지의 몫이다.

 비척비척 오솔길을 걷다가 펄썩 주저앉아 길가에 피어 있는 민들레 노란 꽃을 만지작거리니 힘없이 부러지고 만다. 민들레꽃뿐만이 아니다. 흙 좋은 곳은 물론 보드블록 틈새나 화단 경계석 사이에 가녀리게 피어 있는 제비꽃,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조팝나무의 여리디여린 싹, 겨우 좁쌀 크기만한 배롱나무의 싹도 손녀의 고사리 같은 손에 살짝 닿으니 툭, 하고 떨어진다.

 그런데도 수많은 싹들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계절에 대한 믿음이 아니면 도저히 저런 동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온몸을 맡겨도 괜찮다는 전적인 신뢰로 그들은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여린 싹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은 근심덩어리인 우리 어른들의 심사일 뿐이다.  자연은 그런 것이다. 다 믿고 던지는 것이다. 다 던진 후엔 그냥 믿는 것이다. 자기가 장차 어찌 될 작정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그러면 그게 최고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손녀가 새싹을 닮았다. 새싹처럼 여리고 무력하다, 그러나 저 싹이 이제 곧 짙푸른 색을 띠고 두터워지며 쑥쑥 자라 하늘을 덮듯 이 아이도 무럭무럭 자라 하늘을 날 것이다. 가슴속 깊이 간직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걱정 없이 자랄 것이다.

 그들을 보며 참 부끄럽다. 세월은 어느새 60년을 넘어 살았는데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니 불신의 연속이었다. 남은 인생도 이들 같은 믿음을 회복할 자신이 없다. 다만 이제 조금 마음의 다짐을 하는 것은 이들이 나에게 준 믿음을 온전히 되돌려주자는 것이다. 더 보태어 주지는 못할망정 받은 것 그대로 다시 돌려 주지야 못할까 하는 호기나마 뒤늦게 부려보는 거다.  파릇파릇 피어나는 새싹에게 무한한 부끄러움과 환희를 보내며 이 봄을 맞듯 아장아장 걸어가는 손녀에게 한없는 미안함과 희망을 보내며 다음 세대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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