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무심천에 벚꽃이 하나둘 꽃망울을 터트리는 즈음에 여행을 떠났다. 돌아와 보니 그 며칠사이에 화장지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바람에 꽃잎을 날리고 있었다. 화려한 봄날의 축제를 마친 적요함이 여독이 풀리지 않은 내 마음과 같았다. 친정엄마를 모시고 여동생들과 떠났던 3박4일간의 여행은 즐겁고 행복했다. 몸은 돌아와서 일상의 자리에 앉아 있는데 마음은 아직도 즐거웠던 시간을 보낸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꽃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까마득히 잊고 지내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웃으며 영원히 그렇게 살 것처럼 이별은 아예 상상도 하지 않으면서 살았다. 그 슬픔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가장 큰 아픔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먼저 떠나기도 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슬픔을 거두면서 담대히 그이별을 받아들인다. 사랑하는 한사람의 부재를 마치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의 시간들을 보낸다. 문득 문득 한때는 소중했던 익숙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이 진정 편리한 것인지, 슬픈 것 인지에 대해서 망연히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아버지께서 우리들 곁을 떠나셨다. 오랜 시간 병환으로 병원생활을 하셨지만 생전의 유지대로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 고단했던 이승의 강을 건너시는 아버지의 눈을 내 따듯한 손으로 감겨드렸다. 생전의 그 어느 때 보다도 가장 편안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를 세상에 나게 하신 부모님과의 이별의 순간이지만 그 누구도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큰 슬픔은 오히려 감정의 파문도 없이 깊고 깊은 호수처럼 고요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슬퍼하지도 않으셨다. 안 아픈 곳에 가셔서 이제는 편안해하실거라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지나치게 애통해하는 모습은 자식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셨는지 의연하게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계셨다. 그렇게 사랑하고 미워했던 애증의 시간과 이별을 하고 계셨었다. 숙명처럼 십여 년을 병수발로 지쳐있던 엄마의 모습은 빈껍데기만 남은 허수아비 같았다. 아버지의 수족처럼 살았던 엄마는 두어 달은 홀가분해하시면서 생기마저 도는 듯 했다. 그것도 잠시뿐 수시로 응급실행을 하셨다. 첨단 의료기로 검사를 해도 아무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엄마는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셨던 것이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엄마는 그 편안함이 좋기 보다는 공허했고 생전에 미움이 그리움이 되어서 병이 되었던 거였다. 위안이 필요했다. 엄마의 몸과 마음을 채워드리기로 작정을 하고 여행계획을 세웠다.

3박4일간의 여행계획을 세워 놓고 우선 보약으로 기력을 채워드렸다. 여행을 준비하시면서 생기가 도셨다. 평생을 단정한 커트머리로 사셨던 엄마는 읍내 미장원에 가서 뽀글뽀글 파마를 하셨다. 빨간 색깔의 여행 잠바를 미리 입어보시면서 거울 앞에서 환하게 웃으셨다.

우리를 태우고 천상의 구름 위를 떠가는 비행기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그랬다. 여행 내내 엄마는 젊은 딸들보다 더 앞서서 다니시며 행복해하셨다. 화려한 도시 홍콩의 야경을 함께 즐기면서 늙은 촌부가 아닌 고운 여인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며칠 사이에 져버린 꽃처럼 엄마의 봄날도 아마도 그러했으리라.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린 엄마와의 다음 여행을 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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