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배 제천경찰서 정보보안과장

[신영배 제천경찰서 정보보안과장] 정말 오랜만에 봄 여행을 떠났다. 가족과 함께 남해안을 따라 거제도까지 왔다. 몽돌로 뒤덮인 해변의 자그락 자그락 소리에 귀가 간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바람이 실어 나르는 유혹에 따라 향한 지심도에서는 여인의 입술처럼 붉은 동백꽃에 마음을 빼앗긴다. 한참동안 눈을 감은 채 춘풍유희(春風遊戱)를 즐기면서, 여행 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만족해하던 머릿속이 일순간 저릿하게 긴장되며 불현듯 한 인물이 떠올랐다. 1월에 만난 시인이었다.

 업무 차 방문한 그의 사무실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일상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바로 잎에 대한 이야기였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공직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시민이 꽃으로 주목 받고 빛나도록 자양분을 모으고 제공하는 잎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아! 잠시동안 잊고 있던 잎의 철학이, 마음 심(心)자를 닮아 지심도라 붙여진 섬에서 깨우침으로 다가온 것을 필연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동백은 추운겨울도 자양분을 만들어 꽃에 필요한 요소를 마련해 놓고 그 공을 들어내지 않았다. 모두가 붉은 입술 같은 꽃의 유혹에 빠져 있어도 소외당한 자신을 비관하지도 꽃을 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꽃은 져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바쁜 일상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여행이었지만 공직자의 역할과 가치를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어 무엇보다 기뻤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들풀들과 잎새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 것 또한 즐겁다. 경찰에 입문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늦었지만 좋은 분과의 만남으로 나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하며, 펜으로 원고지를 써 내려가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을 시인을 떠올리며 감사함을 전한다. '아하! 잎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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