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상큼하고 싱그런 초록의 계절이 초입에 이를 때면 문득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라는 정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다. 따지고 보면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부스러기에 얽매어 해마다 열정의 계절을 맞이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함이 우리들로 하여금 해방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맘때면 그 상큼함에 못지않는 속앓이를 한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말했던 "언젠가 한 번쯤 와본 곳 같다"는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고 싶어서...

 우리는 어쩌면 끝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도 가도 신기루 같은 것은 결코 보이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사막과도 같은 세상으로. 비록 그곳이 종착지라 할지라도 우리는 여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곳으로 향해 가다가 때때로 여행의 끝을 볼 때의 설렘과 허망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결국은 숨을 멈추며 한 곳에 도착하고야 말 것인데도 우리는 가고 또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찾아서 아니면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우리는 일생을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찾아 헤매어도 결국 몇 발짝 이상 가지 못했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어딘가에 그 무엇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설렘과 두려움으로 두리번거리며 가고 또 가는 것이다.

 어느 방황시인은 운명적인 달빛이 내리쏘는 밤에 초가지붕위의 박꽃이 환하게 피는 동안 밤을 세 걸음 이상 나아가지 못해 유한하게 생을 끝 마쳐야하는 박꽃들의 운명을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 유한섬에서 벗어날 수 없음과 비유적으로 읊조렸다. 마치 일레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가 달에 가고픈 여행권(Ticket to the Moon)을 간절히 원하듯이...

 이러한 모든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우리자신의 삶에 대한 리듬을 한 박자 더 느리게 하고 삶 자체를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의 삶이란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주문만 외우면 모든 것이 줄줄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어서 결국 몇 평 남짓한 공간에서 몇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고 허덕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좀 더 느긋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계절엔 잊혀질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불현듯 생각나는 무창포 갯벌을 밟고 싶다. 등대 아래에서 「클레멘 타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지난날의 삶을 생각하면서 마음의 전환도 하고 싶다. 거창하게 준비를 한다거나 어떤 비장한 마음을 갖지 않고 집에서 금방 나온 편안한 옷차림에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를 잠 못 이루게 하고 가슴 설레게 만들었던 노래 몇 곡과 낭만주의 시민들의 시집을 읽으면서 복잡한 모든 것들을 잠시 잊어버리고 내 마음과 정신을 황홀하게 사치하고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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