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가난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말일게다. 조선시대에는 의창, 상평창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빈민을 구제하였다면, 요즘은 사회복지사들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의 삶을 보듬어 주고 있다. 우리 구청에서도 취약계층의 복지사각지대 해소 및 희망을 주기 위해 "소외 이웃 보듬기"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달, 우리 동의 대상 가구를 방문했다. 필자가 찾아간 집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딴집이었다.

 낮선 방문객에 집지키는 파수꾼이 컹컹 짖는다. 같이 간 직원이 개 짖는 소리에 옴츠러들기에 "손님한테 짖으면 안 되지" 하고  타이르니 알아들은 양 뚝 그친다. 대문도 없는 앞마당에는 수선화와 해당화가 곱게 피어 있다. 꽃을 보며 예쁘다고 떠드는 소리에 우리를 기다리던 안주인이 나오신다. 작년에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줄 알고 많이 뽑아갔다고 했다. 대화중에 손을 보니 손가락이 다 굽어있다. 굽은 손을 잡으니 차갑고 뻣뻣했다.

 젊어서 자식들 뒷바라지로 안 해본 것이 없다는 어르신은 보따리장수는 물론이고 돈이 되는 일은 무조건 했단다. 노름에 미쳐서 집안도 돌보지 않고, 딸들은 구박하며 학교도 보내지 않았단다. 그런 남편을 원망할 사이도 없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혼자 집안을 지금까지 오롯이 책임졌단다. 시어머니로부터 딸을 많이 낳았다고 구박도 많이 받아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어찌해볼 수 없는 굴레처럼 지금까지 살아왔단다. 젊어서 노름과 방탕한 생활로 집안을 돌보지 않던 남편이 이젠 뇌병변장애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의식 또한 온전치 못한 상태로 누워만 있다.

 어르신은 심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펼쳐지지도 않고, 한쪽 발조차 온전치 못하다. 가족의 병원비 및 생활비는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들이 가까스로 해결하고 있다 했다. 눈물을 훔치며 사정을 털어놓는 어르신께 귀 기울여주는 것도 우리의 일이라 눈높이를 맞추며 들어주다 필자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뇌병변장애로 의식 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남편이지만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단다. 가끔 뜻 모르게 웃어주는 웃음에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며 저렇게 누워있더라도 오래오래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랜 병원생활로 많이 힘들고,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해 원망도 많을 것 같은데 임대한 병원침대가 새 것이라며 좋아 하는 어르신의 얼굴에선 전혀 그런 내색이 없다. 이혼이 다반사이고 제 자식도 버리고 떠나는 부모가 많은 요즘 세태와 비교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당신을 힘들게 한 남편을 원망하기는커녕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그분을 바라보며 지고지순한 사랑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힘들다고, 내 맘에 안 든다고, 쉽게 포기하는 세상이 아니던가. 이런 삭막한 시대에 한 남자를 향한 지어미의 온전한 사랑에 가슴이 뭉클하다. 지금 비록 의식은 없지만 그 집 앞마당에 핀 수선화처럼 수줍은 웃음을 주고받는 두 분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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