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먼저 추진하기로 한 정책이 일자리 창출이다. 청년 실업률이 11%를 넘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노동시장을 들여다보면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빈자리만 해도 20만개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대학 졸업자들은 여간해서 중소기업은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한다. 대신에 몇 년씩 취업재수를 해서라도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청년들은 수십만 명이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중소기업 근무여건을 바꾸는 노력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입사는 인생의 성공을 뜻하고 중소기업 근무는 패배를 의미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및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최소화하고 어떤 일을 하든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서구 선진국은 '신분에서 계약으로'의 변화가 꾸준히 이루어진데 반해 한국은 오히려 신분제가 더욱 공고해지는 모순에 빠져들고 있다. 가치관의 개조가 시급하다.    

 청년 실업자들을 중소기업으로 유인하려면 평균임금이 대기업의 70% 이상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가 근절되어야 한다. 삼성, 롯데, 현대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이고 많은 대기업들이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중소업체를 울린다는 보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어떤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최근 현대차 노조가 사측에 평균 연봉 3000만 원 인상을 요구하는 협상안을 제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관련 중소업체 임직원들은 벌써부터 납품가 후려치기가 들어오게 생겼다고 울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소기업들의 이와 같은 태도가 패배주의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독일 같은 나라는 중소기업이 튼튼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대기업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기업들은 아무리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라도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악의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위협을 한두 번 당하고 나면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대기업들이 이런 '갑'질을 할 수 없도록 강력한 규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철학이 정립되어 있어 귀족 노조들이 중소 근로자에게 돌아갈 임금을 착취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중소기업들의 책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는 경영자들은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수준 높은 복지와 임금을 실현함으로써 회사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영자들이 높은 이익을 내면서도 중소기업이니까 관행대로 근로자들의 임금은 적게 줄 수밖에 없다고 버티는 경우도 허다하다. 중소기업의 기업가정신을 바로 세우는 노력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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