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김진웅 수필가] 지난 4월 하순, 매주 등산을 하는 친구들과 제주도를 다녀왔다. 몇 번 다녀왔나 모를 정도로 여러 번 간 곳이지만 해외(?)라서 그런지 갈 때마다 새롭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섭지코지, 우도 등 가는 곳마다 경관이 수려하고 우리를 반겨주었고, 특히 한라산 등반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하고 값진 체험이었고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백두산 천지는 두 번이나 가보았지만, 한라산 백록담을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해서 항상 미련이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한라산 등반을 주목적으로 제주도를 갔으니 어느 곳보다 기대가 컸다. 대학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가서 한라산에 올라 진달래밭까지 갔을 때 기슭에서는 좋던 날씨가 폭풍우가 몰아쳐서 하는 수 없이 정상까지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하산하였다. 그 후 제주도를 여러 번 갔지만, 다른 관광만 하며 먹거리만 찾다보니 이번에 거의 50년 만에 오르게 되었으니 감개무량하였다.

 성판악까지 관광버스로 이동하여 탐방로를 살펴보니 백록담까지 9.6km이고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바닥에 즐비하게 박혀있는 크고 작은 돌밭을 걷다보니 대학생 때 왔던 생각이 어렴풋이 났다. 등산로 입구에 '해발 750m'라고 씌어있다. 필자가 자주 오르는 우암산은 353m라니 이곳의 높이도 짐작할 수 있다. 한걸음씩 걸으며 주위를 살펴보니 얼핏 고무나무 같은 굴거리나무도 신기하고, 한라산에 자생한다는 노루가 우리를 환영해주어 무척 행운이었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를 되새기며 오르자니 처음에는 보듬어주고 싶던 조릿대도 밀림처럼 보이고, 디딤돌처럼 예쁘게 보였던 길바닥의 돌들이 걸림돌로 보이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얼얼하고 무릎도 시큰거려 걱정하며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정상까지의 길은 난생처음 가는 길이라 감회가 깊었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주목(朱木)도 세월과 풍상(風霜)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여기저기 누워 잠자고 있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니, 옛날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백록을 타고 놀았다 해서 백록담이라는 꿈에도 그리던 비경을 볼 수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져 연못을 바라보자니 백두산 천지와 비교되었다. 그래도 평생처음 보는 곳이라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몰려온 짙은 안개의 심술로 너무 안타까웠다. 좀 더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고 대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남긴 채 내려다보니 정상에 서있는 나는 평범한 내가 아니었다.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세상을 바라보며 백록담의 정기를 받고 있었다. 해발 1950m의 한라산에 비하면 우리는 고작 하루살이만도 못한 존재이다. 그런데도 서로 속이고 헐뜯고 아귀다툼을 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서로 돕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 우리인데…….'

 한라산이 우리에게 속삭여주었다. 이제부터는 더욱 높고 넓은 안목으로 하루하루를 웃고 즐기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며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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