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 변호사

 

[이영란 변호사] 1992년경 방영됐던 "아들과 딸"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다. 배우 최수종과 김희애가 '귀남이'와 '후남이'라는 이름의 이란성 쌍둥이로 출연을 했었다. '후남이'는 엄마의 강한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딸'이라는 이유로 심한 차별 속에 성장한다.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만 해도 '후남이' 엄마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들과 딸은 다르다는 생각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최근 기사를 보니 기혼여성 100명 중 아들을 원하는 여성은 6명에 불과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 수치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의 인식이 현저히 변해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턴가 '딸이 최고'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요즘엔 '딸바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딸'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아들을 낳기 위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이를 낳았다는 어머니들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만 낳더라도 딸이 좋다는 부부들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 딸이라고 해서 아들과 달리 키우지도 않는다. 똑같은 환경을 제공해주고 똑같은 사회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게 요즘 부모들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딸'과 '아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아들'과 똑같은 사랑과 교육을 받고 자란 '딸'들이 사회에 나와서 부딪치는 벽은 '아들'들이 느끼는 벽과는 또 다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딸'은 결혼하면 맞벌이를 해도 집안일과 양육 문제를 주로 담당해야 하고, 부부 중 누군가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면 아내가 그만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대부분의 남자들이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직은 사회가 그렇다고...

 그러나 그 사회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물론 성역할이라는 것은 분명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성역할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이제껏 고착화됐던 성역할이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순간에는 생물학적인 성역할을 제외하고는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

 며칠 전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처음으로 여성 후보자가 지명됐다고 한다. 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성이 수장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던 대법원의 수장후보에도 여성 법조인들이 거론되고 있다. 부모들에게 '아들'과 '딸'이 다른 존재가 아니 듯 우리 사회에서 이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누가 하든 그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내면 되지 않겠는가? 이 땅의 모든 '딸'들이, 이 땅의 모든 '아들'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모두 모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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