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공항 입국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피켓을 들고 사람들 사이를 살피며 서있는 그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금새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긴 비행 끝에 내린 여행지에서 기다려주는 어떤 이가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잘못 만났군! 하는 생각이 스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가 정감이 가지 않았다. 그도 또한 만나서 반갑다고 말은 하지만 누구에게나 하는 일상적인 어투로 함께하는 동안의 여행 일정을 설명해주었고 우리 일행은 말 잘 듣는 아이들처럼 고분고분하게 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았다.

 흔들리는 차안에서도 중심을 잘 잡고 서서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정치사 등등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 와서 새털같이 가볍기만 했던 나의 마음은 새로운 앎으로 채워지면서 여행의 진지함마저도 들게 해주었다. 가볍지 않지만 무겁지도 않은 가이드의 안내 멘트들은 많이 유익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만 탐미했었던 지난 어느 여행과는 달리 느끼고 알게 했던 이번 여행은 순전히 프로페셔널한 가이드 덕분이었다. 첫 만남에 날카로워서 호감이 가지 않았던 그의 눈매가 차츰 지적인 면모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심천으로 가는 기차를 태워 보내면서도 그는 마지막 사람이 안보일 때까지 플랫 홈에서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마카오로 가는 여객선 터미널에서도 그는 서둘러 등을 보이지 않고 손을 흔들며 오래도록 서 있었다. 업무적으로 며칠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과 무슨 정이 들어서도 아닐 것이고 다 큰 어른들이 기차를 놓치고 배를 놓칠 이유도 없을 일인데도 끝까지 서있던 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마카오로 가는 배안에서 출렁이는 바다에 생각을 던져보았다. 뒷모습을 먼저 보이지 않는 그의 예의바름이 잔잔한 여운으로 돌아왔다.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그가 무슨 사연으로 타국에 머물며 길손들의 가이드가 되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지금 현재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의 또다른 미래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중년 남자의 겸손한 뒷모습에서 고단함 대신에 야무진 야망이 잘 익어 가고 있는 것을 훔쳐 볼 수가 있었다.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지 자신의 뒷모습은 타인만이 볼 수 있고 자의든 타의든지 보여지며 산다. 누구나 앞모습은 최대한 치장을 하고 살아간다. 화장을 하고 함박꽃같이 웃으며 마음을 전하기도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감정 상태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렇게 앞모습은 필요에 따라서 연출도 가능하지만 뒷모습은 그럴 수도 없으므로 나를 판단해 주는 것도 순전히 타인의 몫이다.

 등이 굽은 노인의 뒷모습에서는 세월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늦은 퇴근길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위 층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구겨진 양복 등 뒤로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누구나 내가 모르는 나의 뒷모습이 있다. 고단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 그 뒷모습들이 그나마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치장할 수 없는 우리의 뒷모습들이 가장 진정한 나의 모습이리라. 겉과 속이 같은 사람,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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