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배를 타고 항해하다가 거친 풍랑이 몰아치는 악천후(惡天候)에 조우했을 때 돛을 내리고 20리고 30리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노를 저어 육지에 닿았다면 고비를 넘긴 것이다. 등산을 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길을 잃었을 때 다급한 나머지 집착성을 잃고 허둥지둥 헤맨다면 그 사람의 일생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숙련된 등산가는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장소를 떠나지 않고 거친 날씨의 회복을 기다린다. 그렇게 앉아 있노라면 새로운 판단이 솟아오르고 생각지도 않던 활로(活路)가 열리기 때문이다.

 어떠한 계획을 실행할 때 그 과정에는 반드시 고비가 있고 급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면에서 안이하게 타협하거나 기가 꺾이거나 되는대로 놓아둔다면 그 계획은 틀림없이 좌절되고 만다. 따라서 이때 절대로 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그 고비가 험난한 것이라도 전심전력을 다해 이를 넘겨야 한다.

 금호그룹 회장 박인천 씨의 경우를 보자. 단 2대의 택시로 출발했던 그의 운수사업이 제대로 규모를 갖춰 지방의 최대 운수업체로 발돋움하게 되었지만 그의 버스 사업을 6.25 동란으로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그의 버스들은 군(軍)에 징발되거나 또는 포탄을 맞아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동란은 그의 사업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개인으로서도 광주 근처의 시골에 피신해 있다가 체포되는 비운을 당하게 한다. 그는 공산당에 체포되어 부르조아라는 명목으로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형무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가족들이 필시 공산군이 후퇴할 때는 그들을 모두 몰살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형무소 주변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탈출할 수가 있었다. 고난의 시절, 혼돈의 시절, 그는 천운(天運)이 도와서 다시 살아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9.28 수복 직후 민간교통 수단이 전무(全無)상태였으므로 말할 수 없는 불편을 겪고 있다는 사람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지친 몸을 이끌고 사업 재건에 착수한다. 교외의 논바닥, 산골짜기를 뒤지며 공산군 들이 부셔 버리고 떠나간 버스의 잔해를 주워가면서….

 이 당시 그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직접 쇠 조각을 맞추기도 했으며 도둑맞았던 타이어를 찾아 다시 끼우고 이렇게 부서진 부품들을 조립하여 겨우 버스를 다시 굴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폐허에서 주저앉아 버렸다면 그가 그때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더라면 그의 일생은 아마 범부(凡夫)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고비를 넘겨야 비로소 승리의 영광을 차지하는 경우가 어디 박인천 씨뿐이겠는가. 어떤 분야에서건 무릇 성공자란 사람들은 모두가 이러한 결정적 고비를 훌륭하게 넘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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