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즐겨 찾으며 마음을 맑히는 곳이 있다. 농다리다. 4월, 미선나무 꽃으로 시작된 향기가 아까시향을 거쳐 쥐똥나무 꽃향기로 줄을 잇는다. 갈 때 마다 다른 풍광으로 맞아주는 그곳에서 심호흡으로 가슴을 열면 왠지 마음이 넉넉해진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보는 것도 좋다. 어느 날, 문득 수만 사람들의 발아래 짓눌려 있는 농다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금천 물길 따라 뚝뚝 초록물 들던 날, 생거진천 농다리축제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상여 메고 아슬아슬 돌다리 건너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사진작가들이 장사진을 이룬 풍경이 또 다른 볼거리다. 둥둥 바지를 걷어 올리고 냇물에 들어서서 카메라 렌즈에 눈을 박고 있는 사람들, 돌다리 위에 선 사람, 알록달록한 구경꾼들, 누가 진정 피사체인지. 이곳에선 모두가 주인공이자 서로 배경이 되어 어우러진다.

 지방유형문화재 28호,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전국적으로 농다리의 명성이 높아져 가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크고 작은 돌들이 밑돌 위돌, 서로 괴고 받침이 되어 하나의 다리로 얽혀 있는 것도, 성글성글 구부정히 냇물에 엎드려 있는 모습에서도 강하거나 완벽함은 보이지 않는다. 다소 엉성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어 온 것이 신비롭다. 그 옛날에 놓은 다리가 과학적인 공법이라며 건축학적 사료의 가치를 운운하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민초들의 심성이 먼저 읽힌다.

 홍수가 지면 그 물 속에 온 몸을 내어주고, 물의 결에 따라 제 몸을 맞추며 그들과 함께 해온 돌다리, 그동안 왜 모진 폭풍우가 없었겠는가. 때때로 할퀴고 간 수마(水魔)의 상흔을 보듬으며 그래도 견뎌냈다. 무려 천 년여 세월을 그리 무던히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문다. 이 돌다리의 역사를 찾아 최근 수만 명씩 몰려들고 있다. 이번 축제에는 4만 3천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너른 초평호와 수변 초롱길로 연계되어 있는 자연경관, 그리고 천년 돌다리라는 독특한 문화재가 어우러져 걸작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돌다리가 지금 문화재를 찾는 사람들의 발아래 짓밟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다. 교행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붐빈다. 좁은 돌다리 위 한 켠에 비켜서서 교행하다 보면 위험천만이다. 더 이상 저대로 둔다면  문화재가 발길에 짓밟혀 무너지고 말 것 같다.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을 문화재로 지정한다. 마땅히 보존하고 대물림해야 할 유산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호각을 세워 풍화나 자연재해, 또는 사람들의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경계를 하여 보호하기도 한다.

 생거진천의 농다리는 지금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만 보호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 유명세로 혹사를 당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농다리 보호를 위해 또 다른 다리건설을 허가해야 한다. 농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놓는 다리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다. '보호물'이다. 보호물이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물이다. 지금 농다리는 보호물로의 다리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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