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작은 공간에 햇살이 가득하다. 서로들 아침 인사를 하느라 시끌하다. 생기가 그대로 내게 전해진다. 이런 날은 바람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활짝 열고 조로 가득히 물을 담아 목욕을 시킨다. 먼지가 앉아 있는 잎사귀는 아기 세수 시키듯이 손으로 한 잎 한 잎 닦아낸다. 출퇴근 시에도 눈도장을 찍다보니 자식처럼 여겨진다. 자라는 모습을 사진 찍어주고 아이에게 만난 음식을 먹이듯이 그들에게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느 날부터 활짝 꽃피었던 장미가 꽃잎이 마르더니 잎사귀마저 빛을 잃어간다. 붉디붉은 장미였기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물을 흠뻑 주고 창가로 자리를 옮겨주었지만 그럴수록 빛은 더 잃어가고 급기야는 줄기마저 시들해진다.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한쪽 그늘에 두었다. 한겨울에도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던 양란蘭은 쭉 뻗어나가 다른 화분에 다리를 걸치고 주인 행세를 한다. 가느다란 줄기에 촉을 틔우는가 싶더니 하얀 꽃을 피운다.

 사람이나 화초나 정성을 들여야만 성장하고 꽃을 피운다고 믿었던 나에게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사람도 화초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모두 같을 수 없건만 나는 언제나 일방통행이었지 싶다. 양가 어머니께도 살아오신 여정이 다르거늘 섬세하게 대해 드리지 못하였다. 아이들의 미래를 나의 뜻대로 강요했고 남편은 내가 원하는 길로만 걸어가게 하고 싶었다.

 연출가라도 되는 양 구석에 있던 장미화분을 들어 올렸다. 이게 웬일인가. 연한 잎사귀가 실눈을 뜨고 있다.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다시금 생명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그를 의도치 않게 기다려 준 셈이 되었다. 남의 집살이를 해도 당당한 란蘭과 고운 모습으로 온실의 화초처럼 피어 있었으나 강해지고 싶었던 장미가 두런대는 소리로 작은 화단이 싱그럽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