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수 로뎀손해사정법인 대표
미국에서 시작된 부동산가격 폭락과 그로 인한 금융불안으로 한국에서도 부동산 경기의 거품론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택가격, 특히 아파트 가격의 하락이 시작된 듯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빨랐던 한국의 도시화는 한국으로 하여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 거주율을 갖게 만들었다.

아파트 가구수는 2000년 523만 1000가구 (47.7%)에서 661만 6000가구로 138만가구가 증가했으며, 흥미로운 건 지방의 아파트 비중이 더 높다는 것이다. 2000년대 새로 지어진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85% 넘었으며 이 비율은 계속되고 있기에 아파트 거주율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나와 내가족이 쓰는 아파트의 내부공간은 쾅 소리와 함께 외부와 폐쇄되는 철문을 사이에 두고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고급 마감재와 설비기기들로 치장한 채 편리성과 안온함을 즐긴다'는 점에서 한국의 아파트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라고 했다는 외신이 있었다. 그러나 철문 바깥의 공간이나 단지 외부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방치하는 자폐의 단지와 그로 인한 우울한 도시를 만들어 왔다는 점에서 한국의 아파트는 세계 최악이라고도 했다는 이중된 평가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아파트의 유래는 유럽에서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몰려드는 노동자계층의 주거를 위해 고안된 거주형태였다. 태생이 개천의 미꾸라지라도 자본의 힘만 닿으면 용으로 변신시키는 자본주의의 응용력이 놀랍다. 높은 인구밀도에서 비롯된 실제적인 필요성은 물론이고, 아파트라는 기존의 주택과는 다른 생활양식은 서구화는 곧 산업화라는 등식에 맞았다. 고층건물은 현대화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건물의 높이가 올라갈수록 한국의 경제도 성장하는 듯했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이고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는지 알 수 있었던 아파트 이전의 집의 형태와는 천양지차이다. 개인주의와 단일 가족주의가 체화된 도시민에게 아파트는 가장 적합한 주거 형식이다. 사회나 집단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여 간섭 받기 싫어하는 개인들, 그리고 가정 그 자체를 이상적인 공동체로 삼아 다른 가정으로부터 방해 받기 싫어하는 가족주의를 위한 곳이 아파트이다. 전통적인 '우리(마을)'라는 개념이 훨씬 작은 '우리(가족)'로 급격히 대체된 것이다.

유교적 공동체의 해체와 더불어 급속히 가족의 단결로 확대되어가는 느낌이다. 지난달에 아파트단지에서 또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사고가 접수되어 상담을 하게 됐다.
단지내 청소차량이 들어왔다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던 아이를 충격한 사고였다. 사고자체의 충격도 충격이였지만 사고현장에서 있었던 현상에 충격을 더 많이 받았다.

사고가 발생하고 아이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곳에 모인 많은 아파트주민들이 그 아이를 아는 아이가 없어 부모에게 연락을 못하다가 한참후에야 관리사무실의 방송을 듣고 달려온 엄마를 통해 한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살고 있는 주민이였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였지만 또한 아파트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느시대 보다 거리상 이웃과 가까이 살면서도 정서적으로는 멀어진 주거형태가 아파트이다. 내가 관계된 것에만 민감하고 그 외에는 무신경한 귀차니즘 또한 경쟁체제의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자기 피부에 닿지 않는 문화나 연예인 이야기에는 열성과 호기심을 보이지만 정작 내 집 주변 일에는 무관심하다.

자기 주변의 일은 자신의 일상처럼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이웃 사람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풍조는 죽은 지 며칠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는 독거노인의 죽음이 빈발하는 데에서 잘 나타난다. 사상최악의 경제한파가 봄이 왔음에도 좀처럼 나아지는 기색이 전혀 없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그 어느때보다 팍팍하고 힘든 시기이다.

허리띠 졸라메고 아파트 한채 마련하는 것이 꿈이였던 서민들의 삶에서 이제 아파트값하락은 또다른 시련의 연속일 것이다. 그럴때일수록 아파트 문화공간을 정이 넘치고 따뜻한 공간으로 사람냄새나는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우리 모두 해야할 것이다.

내일 당장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모든 이웃에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서로 힘내라고 격려할 때 따뜻한 봄날은 조금더 일찍 찾아올 것이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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