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출신 가수가 부른 유행가 중에'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가 있다. 그렇다.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고, 또 그럴 권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들 하지만, 사랑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에리히 프롬이 쓴 책 중에'사랑의 기술'이라는 게 있다. 이때의 기술은 테크닉이라는 말인데,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요즘 현대인들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는 것만 원망했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어떠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가는 생각지 않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니 남을 사랑하고 또 남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기 위해서는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첫째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은 댓가도 치르지 않고 물건을 갖기를 원하는 도둑의 심보와 다를 바가 없다. 도둑의 심보이기는 두 번째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기만을 원한다면, 그것만큼 불공평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자기희생을 전제하면서도 무한히 기쁘기만 한 남을 위한 행위이다.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희생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사랑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행위이다. 희생은 사람을 위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희생을 통해서 상대의 생명적 가치를 한층 더 높여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뚱딴지같은 사랑타령인가.

요즘처럼 진정한 사랑이 필요한 때도 없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가족 간의 사랑, 동료 간의 우애, 친구 간의 우정과 신뢰, 이런 것들이 다 지금 필요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떤 때는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미생물인 경우도 있다.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것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움, 즉 시기와 질투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 또한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도 않는 사랑, 즉 연민과 배려와 희생의 마음인 것이다.

▲ 임승빈
청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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