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어머니의 병이 점점 깊어진다. 노환이라 그러려니 더 이상의 치료방법이 없겠거니 하고 어머니의 고통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끝내 척추 수술은 받지 않으신다니 재활치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팔십 중반의 노인에게 러닝머신 위에서 걷기나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찌릿한 전기 자극은 살을 찢어 놓는 것 같다고 하신다.

 옆에서 고통을 잊으라고 재롱을 떤다. 자꾸 아프다고 상을 찡그리는 엄마의 눈꺼풀도 손가락으로 벌려보고 주름도 당겨 펴보고 다리도 주무른다. 어린 시절 병원에 가서 무섭다고 투정을 부리면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 우는 아이는 큰 주사 놓을 거지요?" 하고 겁을 주었던 것처럼 "선생님, 자꾸 엄살 피우는 사람에게는 눈꺼풀에도 전기 충격 줄 거죠?" 했더니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다 웃으신다.

 언젠가는 이 불편도 끝이 나리라. 일주일에 이틀을 고스란히 병원에서 지내야 한다. 늘 시간이 부족하여 동동거리는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재활치료뿐 아니라 다른 병원도 다녀야 하니 힘도 시간도 부족하다. 언젠가는 끝이 나리라 생각하다 방정맞은 생각을 하는 나를 책망해 보지만 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곱게 차려입고 아내 손을 꼭 잡고 들어오는 노부부를 만났다. 세 번이나 뇌수술을 했다는 아내를 데리고 재활치료 받으러 다닌 지 9년이란다.

 '나는 이도 안 났구나, 이제 시작이니…….' 주례선생님이 영혼 없이 읽어대는 '건강할 때나 병든 때나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하는 혼인서약을 분명히 지켜내신 모범적 부부의 모습이다. 노부부이기 때문에 그럴까. 요즘 젊은이들이야 누가 배우자를 끝까지 살뜰히 보살피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늙어가겠는가.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 같은 부부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치료실이 붐볐다. 몇 차례 마주친 익숙한 환자도 있고 침대에 실려 들어오는 환자도 있다. 하체가 마비된 젊은이들이 들어올 때 절로 시선이 가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환자는 의외로 표정이 밝다.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가망이 있는 모양이라는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에 신경이 잔뜩 쓰일 때 휠체어에 환자가 실려 온다. 자는지 눈을 뜨지 않는다. 흘러내리는 침을 옆의 남편이 연신 닦아 준다. 눈을 감고 입을 우물거리며 침을 흘리고 있는 아내를 예쁜 아기 어르듯 한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돌봐주는 내 남자도 아닌 남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혼인서약을 잘 지켜주는, 사랑과 정이 식지 않은 슈퍼맨 같은 남편들이 감사했다. 아직은 불편하지만 조금은 걸을 수 있는 어머니의 병도 그만한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머니 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고단한 삶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되었다. 힘든 날은 눈을 낮춰보면 얼마나 행복한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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