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김진웅 수필가] 지난 주말, 뜻 깊은 행사가 있었다.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충북수필문학회 행사로 충청남도 서산시 일원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문학기행은 말 그대로 현장체험을 통하여 자연을 벗 삼아 자신을 성찰하고 견문을 넓히고 글의 소재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행사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갖가지 풍광을 보고 가슴 설레었다. 언제 보아도 또 보고 싶은 푸른 바다, 바다처럼 초록 물결이 드넓게 펼쳐진 서산목장…. 어느새 즐거운 마음도 무거워졌다. 가는 곳마다 오랜 가뭄으로 대지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제법 규모가 큰 저수지도 바닥이 마르다 못해 풀밭이 된 것을 보고 안타까워 말을 잊을 정도였다.

 서산 마애삼존불, 보원사지, 개심사, 해미읍성, 간월암 등을 탐방하며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값진 체험을 하였다. 같은 충청도라 그런지 더 친밀하게 생각되는 것은 편견일까. 여행의 가장 큰 행복은 풍경뿐만 아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서산시청에서 파견한 김재신 해설사의 해박하고 흥미 있는 해설을 들으며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글의 소재도 많이 얻을 수 있어 무척 기뻤다.

 여러 명소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지만, 특히 국보 84호의 서산 마애삼존불은 그동안 이야기만 듣고 인터넷으로만 보았는데, 직접 와서 보니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로웠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가야산 계곡 절벽의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있어 풍화작용에도 안전하고, 불상 위의 큰 바위가 처마 역할을 하여 비도 막아주는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룬 지혜에 놀랐다. 현재불인 석가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미래불인데 어린아이의 순진한 미소를 띤 미륵반가사유상이, 오른쪽에는 과거불이며 양손으로 구슬을 감싸고 서 있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살아있는 양 조각되어 있다. 차갑고 단단한 큰 바위에서 이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中庸)의 아름다움, 온화한 미소와 섬세한 기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이러한 국보가 가야산의 품에 숨겨 있다가 발견된 지가 60년도 채 안되었다 한다. 1959년, 부여 국립 박물관장인 홍사준 박사가 보원사터에서 유물조사를 하던 중 나무꾼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내게 되었다니…. 해설사의 설명도 재미있었다. 웃고 있는 산신령 옆의 부인이 다리를 포개고 앉아 볼에 손을 대고 있으니, 왼쪽 부인이 약이 올라 손에 돌을 쥐고 서 있다는 해학(諧謔)이 넘치는 이야기가 이 고장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왔다 한다.

 서산 마애삼존불을 무아지경으로 바라보며 관조해본다. 시련이 크면 클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은 깊어질 수 있다.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려 자리 잡고 1,500여 년 세월을 오가는 이들이 발길을 멈추고 울며 웃으며 새로운 힘을 얻었을 게다. 빛이 비취는 방향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는 신비로움, 인간미 넘치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백제의 미소, 부드럽고 잔잔한 교훈을 가슴에 간직했을 것이다. 각박한 세상에 마애삼존불의 넉넉하고 포근하고 자애로운 미소와 품성을 닮아 살아가고 싶다.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백제의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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