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갈증이 인다. 아무런 소식도 없는 하늘이 야속하다. 논밭에 곡식들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물이 모자라 힘든 상황인데도 들녘을 나서보면 자연은 초록의 열매들을 풋풋하게 키워내고 있다. 요즘은 수자원시설이 잘되어 있어 대부분의 논은 이미 땅 냄새를 맡은 벼들이 초록빛을 발산하며 자라고 있다. 하지만 밭곡식들은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 스프링클러 시설이 되어 있는 곳도, 인력으로 물을 주는 일도 한계가 있다.

 밭고랑은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먼지가 인다. 밭에서 말라가고 있는 농작물을 바라보며 타들어가고 있는 농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하늘은 강렬하게 햇볕을 쏟아내고 있다. 한낮에 한줌의 소나기라도 내려 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소나무에 솔방울이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솔잎은 안보이고 솔방울만 보였다. 초록빛의 솔방울들이 예쁘지 않은가! 그런데도 가지마다 빈틈없이 많은 솔방울들이 달려 있는 것을 보니 몸에 소름이 돋았다. 소나무는 척박한 환경이 되면 종족 번식을 위해 솔방울을 많이 달아 놓는다고 한다. 움직이지도 말도 못하는 식물도 제 사는 곳이 만만치 않으면 나름의 살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산다는 일에 있어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 마찬가지다. 세상사 억지로 되는 일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무슨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삶에 있어 제 모습, 제 결대로, 순리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일인 것을. 극한의 가뭄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키워내는 자연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뭉클하다. 모든 것은 때가 있으니 그저 마음만 아플 뿐이다. 그렇지만 일 년 농사인 만큼 애타는 농부의 시름을 어찌 달래랴! 이런저런 일들로 어려운 이 시기에 하늘로 향하는 우리 모두의 간절함이 한 마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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