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북한에 억류된 지 529일 만인 지난 13일 코마상태(뇌사)로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고향인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돌아온 지 6일 만인 19일 급기야 사망했다. 미국 전역이 대북 강경 제재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뒤덮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미 정치권이 대북 제재 강화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언론들도 대부분 북한 정권의 인질 만행을 규탄하는 사설을 게재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웜비어 가족에게 위로전을 보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조전에서 북한이 인류의 보편적 규범과 가치인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개탄스럽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개탄스럽다'고 한 표현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너무 평온해 보인다. 우리 국민은 아니지만 동맹국 국민이 주적에 의해 식물인간이 되고 사망에 이른 데 대해 北정권의 잔혹성을 꾸짖고 책임을 묻는 정도는 표출했어야 했다. 北과 대화를 추진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못된 행동에 대한 준엄한 비난은 별개이어야 한다.

 웜비어는 국가 살인에 의해 희생됐다. 불량정권(rogue regime) 북한이 잡았던 인질을 고문과 폭행 등 가혹행위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형사 범죄 사건이다. 한창 꿈에 부풀어 있는 전도양양한 대학 3학년생, 그것도 자기들 나라에 돈을 쓰려고 온 관광객이 그깟 정치선전물 한 장 뜯어냈다고 체제전복이라는 어마 무시한 혐의를 씌워 15년 노동교호형을 선고하다니! 북한이 범죄집단임을 이번에 재확인했다. 인질 범죄는 가장 죄질이 나쁜 범죄로 만인의 공분을 사는데, 국가가 버젓이 극악한 인질 살해 악행을 자행하고 있는데도 전 세계가 속수무책이니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우리 국민이 당한 건 아니라고 해도 북한에게 "이게 나라냐"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광화문 광장 어디에선가 들려와야할 텐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니 허탈하다.

 웜비어가 사망하기 바로 전날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자리에 있는 문정인 연세대 명예 특임교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한복판에서 '한미 군사훈련 축소',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불필요' 주장을 폈다.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 중단하면' 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드 배치를 사실상 1년 중단시킨 문재인 정부의 일련의 조치로 미국이 불쾌함을 드러낸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파장이 컸다. 더구나 그는 "사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이 깨진다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고 본말이 전도된 막말 발언까지 내뱉었다. 문제가 되자 그는 학자로서 한 말이라고 둘러댔다. 참 어의가 없다. 발령이 났으면 학자출신 대통령 특보이고, 그의 발언은 대통령 특보의 발언이다.

 그가 한 말은 미국이 해야 어울리는 것이었다. 한국을 지키기 위해 와 있는 주한미군을 보호하고,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1조 원이 넘는 장비를 자국 예산으로 배치하겠다는 건데 이것을 환영하지 않는다면 그게 동맹국이 할 일이냐라고 항의할 수 있다. 경제적 의존도가 큰 중국의 보복, 사드의 효용 미흡, '사드 한반도 배치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따위의 주장은 운동권의 단세포적 시각에 불과하다. 시선은 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서 쏠리고 있다. 부질없는 무력시위는 그만두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대북 제재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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