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일개 행정관 하나가 청와대를 뒤흔들고 있다.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장관이나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수석비서관도 아닌, 행정관 하나 때문에 청와대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없다니 참으로 답답하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장본인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이다.
탁 행정관은 과거 자신이 쓴 책에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의 저급한 여성 비하 표현을 늘어놓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성계와 정치권이 즉각 경질을 촉구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당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마저도 탁 행정관의 그릇된 여성관과 자질을 문제삼아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탁 행정관은 이미 논란이 된 자신의 저서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표현으로 비난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엔 공동저자로 참여한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란 책에서 도를 넘어선 여성 비하 표현으로 거센 비판을 더하고 있다.
새롭게 드러난 여성 비하 표현들을 살펴보면 '임신한 선생님들이 섹시했다'거나, '고1때 여중생과 성관계를 가졌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성관계 대상일 뿐으로 친구들과 공유했다'는 등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의 왜곡된 여성관과 변태적 성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같은 탁 행정관의 여성 비하 표현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자 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 여성 의원들은 22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문 대통령은 즉각 탁 행정관을 해임하고 상처받은 여성들과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묘사하며 여성들에게 말할 수 없는 수치감을 안겨준 것도 모자라 일선에서 사명감으로 일하는 여교사들에게도 심한 모욕감을 줬다며 분개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 여성 의원들마저 가세하고 나서면서 탁 행정관의 경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백혜련 대변인도 이날 탁 행정관의 부적절한 표현이 도를 지나쳤다며 이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탁 행정관에 대한 비판 수위가 고조되고 있음에도 청와대는 아직까지 별다른 조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가 탁 행정관 개인의 그릇된 인성과 여성관의 문제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일개 행정관 하나 때문에 청와대의 인선 기준과 여성가치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초래, 국정 운영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탁 행정관 스스로 청와대 근무가 적절치 않다는 점을 깨닫고 자진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권력욕에 눈이 멀어 단순히 과거의 일이라는 궤변으로 모면하려 한다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옛말처럼 인정과 아집에 이끌려 공직 수행의 기본 자질마저 외면한다면 결국 국민적 불신과 비난만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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