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진열대 위에 물건을 채우느라 직원들이 분주했다. 나도 채소코너의 상품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때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서너 발자국 앞에 먹구름 같은 뭉치가 귀신처럼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반대쪽으로 순간이동을 하듯이 뛰었다. 직원이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그제서야 버림받은 것이 분명한 강아지의 형상이 보였다. 허기를 못 이겨 먹을 것을 찾아 들어 온 듯싶다.

 나는 평소 털 알르레기가 있어 아무리 사랑스런 강아지라도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강아지에게는 차마 그럴 수 없어 물을 떠다 마시게 했지만 그것마저도 넘기질 못한다. 학대를 받은 흔적이 역력하여 119에 문의하자 시청으로 신고하란다. 늦은 시간이라 하루를 재우고 아침에 연락하기로 했다. 직원이 조심스럽게 박스에 넣어 밖으로 나가고 나는 우유라도 먹여볼 요량으로 따라 나갔다. 자신을 해치려는 줄 알았는지 몸부림치던 뭉치가 초인적인 힘으로 튀어나가 다른 상가 쪽으로 줄행랑이다. 찾아 나섰지만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을 키운다. 고객들이 반려견을 갓난아기처럼 안거나 업고 매장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가족 간의 서열도 안주인 다음이란다. 강아지도 어느 누구에게 입양되느냐에 따라 팔자가 달라지는가 보다. 외국의 어느 배우는 재산 상속을 반려 견에게 했단다. TV동물농장에서는 유기견이 몇 년째 휴게소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강아지를 모시고 살수만은 없지만 적어도 생명이 있는 그들을 함부로 버리고 학대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더운 바람이 불던 해거름에 뭉치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이미 동공이 풀려 있었기에 예견한 일이기는 하지만 물 한잔 먹인 것도 인연이라고 가슴 한쪽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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