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깊은 밤 머리맡에 둔 핸드폰의 진동음이 연속적으로 울린다. 필경 이 늦은 시간에 누군가 피치 못할 중요한 일로 전화를 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잠결에 더듬더듬 핸드폰을 열었다. 친구의 울먹임이 한밤중의 정적을 깼다. 남편이 바람이 났단다. 남편의 오래된 연인의 존재를 알게 된 친구는 절망했다. 주위에서 잉꼬부부로 부러움을 샀던 친구부부의 뜻밖의 소식에 나도 잠이 확 달아났다. 뭔가 오해가 있을지 모른다는 위로의 말로 진정을 시키고 다음날 초췌한 친구의 모습을 마주했다.

 분명한 불륜의 증거가 있음에도 친구 남편은 완강한 부정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억울하다며 펄펄 뛴다고 했다. 지난밤만 해도 분노가 폭발할 것 같던 친구의 눈빛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 참으로 다행이었다. 친구 남편의 완강한 거짓말은 어쩌면 아내를 존중하는 최선책이었는지 모른다. 만약에 친구 남편이 진지한 어투로 오래된 연인의 존재를 순순히 고백했더라면 아마도 친구가 아름답게 가꿔온 꽃밭은 망가지고 말았을 거였다.

 불씨를 남긴 채 그렇게 급한 불은 꺼졌다. 친구부부는 평온해보였지만 휴화산처럼 긴장의 조짐은 늘 팽팽했다. 오히려 그 긴장의 끈은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소홀했던 서로를 충분히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 내 친구는 철철이 맛있는 김치만 담그는 아줌마가 아니다.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리듬댄스를 배우러 문화센터를 다니는 우아한 여인이 되어 있다. 친구 남편은 웬일인지 요즘은 충직한 견공처럼 집을 잘 지키며 지낸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참으로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았다. 거짓말, 그것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합리적인 생각까지 하면서 당연시하기도 한다. 거짓과 진실은 분명 다르지만 그것이 어떻게 쓰임에 따라서 거짓은 옳음이 되기도 하고 진실이 독이 되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기 위한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라면 순수한 의도의 거짓말은 단지 내 발등을 간혹 찍을 뿐이다.

 양치기 소년이 단순히 심심해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누군가에게 손해를 주기 위함도 아니었고 순전히 장난기의 발동이었다. 결과는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양들을 다 잃고 말았다. 거짓말쟁이의 본보기로 우리는 양치기소년을 얘기하지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나도 거짓말을 많이 하면서 살았다. 지금의 나를 키워준 것은 어쩌면 그 8할이 거짓말 덕분이다. 나는 나에게 스스로 가당치도 않은 거짓말을 많이 하며 살았다. 가능성도 없는 목표를 설정하고는 꼭 해내고 말거라면서 나 자신에게 큰 소리를 쳤었다.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어떤 일도 나는 할 수 있다고 내게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었다. 그 결과들이 거짓말처럼 하나씩 이루어져 가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또 나에게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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