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트랑블레·지식을만드는지식
원치않는 소속 벗어나려 해도
현실적 한계 부딪혀 매번 좌절
'개인-공동체 간 갈등' 주제를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묘사

▲ 시누이올케들

[충청일보 신홍균기자] "난 운도 없지, 정말 운도 없어! 항상 머리에 똥을 뒤집어쓴다니까! 이 찌꺼기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크레스제에서 일하면서 병이 도진 거야! 내 삶에서 무슨 일이든 일어났으면 했어, 알겠어, 무슨 일이든 일어났으면 했다고! 예쁜 옷, 멋진 차, 예쁜 집을 갖고 싶었어! 난 등에 걸칠 식당 유니폼밖에 없었어! 항상 가난했고 살기가 너무나 팍팍했어. 변화가 필요했단 말야! 내가 싸구려라는 거 알아, 하지만 거기서 탈출하고 싶었어! 난 세상에 뒷문으로 들어왔지만 앞문으로 나가고 싶었어! 아무도 날 방해할 수 없어! 날 멈추게 할 수 없다고! 린다, 넌 훗날 내가 옳았다고 할 걸! 이삼 년만 기다려 봐. 그러면 나 리즈는 다른 사람이 될 거야. 돈도 갖게 될 거고, 알겠어?"(93쪽)

살림살이 고만고만한 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한 마을에서 주인공 제르멘이 어느날 엄청난 경품에 당첨된다.

그런데 이 경품을 수령하는 방식이 좀, 아니 무척이나 번거롭다.
당첨 대가로 받은 우표를 우표책에 붙여야 경품과 교환할 수 있는데 붙여야 할 우표가 무려 백만 장이다.

제르멘은 딸, 시누이, 시누이의 어머니는 물론 이웃 여자들까지 모조리 불러 모아 우표 붙이기 작업에 돌입한다.

경품을 받아 집을 새 단장할 꿈에 부푼 제르멘과 그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여자들의 수다가 시작되고 그 속에서 고된 삶에 대한 한탄이 쏟아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녀들의 마음에는 제르멘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자리잡는다.
이윽고 난투가 벌어지면서 여자들 만의 소규모 축제는 엉망진창으로 끝난다.

백만 장의 우표가 허공에 날리며 체념한 듯한 여자들의 노랫소리로 극은 막을 내린다.
'퀘벡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캐나다 작가 중 가장 유명하다는 미셸 트랑블레의 작품이다.

1942년 6월 25일 몬트리올에서도 주로 이민자들과 노동자들 구역인 몽-루아얄 플라토(le plateau de Mont Royal)의 파브르(Fabre) 거리에서 노동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파브르 거리의 한 지붕 밑에서 13명의 세 가족이 살았던 어린 시절, 그는 할머니·어머니와 함께 문학적 삶을 공유했다. 이런 분위기는 훗날 작가의 문학적 열정에 매우 소중한 밑받침이 됐다.

198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문학예술기사(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de France)로 임명됐고 연극 분야에서도 최근 20년 간 가장 뛰어난 몬트리올 극작가로 자타가 공인하며 1989년 몬트리올서적그랑프리, 1992년 몬트리올저널연극그랑프리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이 작품은 이주 여성, 특히 노동자 계급 여성 공동체의 속성을 보여 준다.
이들은 원치 않게 속해있는 이 공동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공동체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들의 시도는 매번 좌절된다.
개인과 공동체의 갈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미묘하게 드러냈다.

무대장치와 공간, 소품 사용을 통해 주제를 강화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트랑블레의 극작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176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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