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허공으로 바람이 지나고 구름이 지나간다. 이어서 꽃들이 입을 연다. 빨갛게, 노랗게, 주홍으로 그리고 핑크빛으로 제각각 할 말들을 하고 있다. 어떤 것은 잘 가꾸어진 꽃밭에서 또 다른 꽃들은 들에서, 산에서, 척박한 돌 틈 사이에서,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며 타고 난 제 모습으로 서 있다. 그리곤 제 능력만큼의 열매를 맺기도 하고, 작은 들꽃들은 앙증맞은 미소로 바람을 좇다가 삶의 미련 같은 씨 한 알 단단하게 만들어놓고는 어느 날 소리도 없이 바람을 따라 가버린다.

 고관절골절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육신을 뒤척이며 천장만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애련하다. 평소에 한 성격 하던 분이 자신의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으니 본인도,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도 힘겹다고 노인전용시설까지 운운하고 있다. 장작개비 같은 노모의 모습위로 지나 간 세월들이 겹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늘 손님이 북적대었고 어머닌 고운한복에 흰 앞치마를 두르고 바람소리를 내며 손님들을 맞이하곤 했다. 이제는 어머니의 고왔던 시간들은 손자에게 들려주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요즘은 젊은이들의 시대이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은 세월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나이 들어 갈수록 신체적, 정신적 변화에 자기연민에 빠지게 마련이다. 병석에 누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노모를 바라보며 노년이 더욱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의 끝을 초연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그러기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의 수레바퀴 앞에서 의연해지도록 내 주위의 모든 관계에 있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으며 신체적, 정신적 변화에 인내하는 삶이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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