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자네의 인생을 모래시계라고 생각하게. 모래시계의 맨 꼭대기에 담겨있는 모래는 천천히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가늘고 긴 홈을 타고 통과하는 걸세. 그러나 한 알 이상을 통과시키려 하다가는 시계는 고장이 나고 말아. 우리는 모두 이 모래시계와 같은 걸세. 아침에는 그날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차례로 하나씩 처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하려들다가는 마치 모래시계처럼 우리의 육체나 정신은 파괴되고 마는 것일세." 몹시 지쳐 미처 버릴 것 만 같았던 어느 하사관에게 들려준 군의관의 말이다.

 그는 전상병(戰傷兵) 기록계의 하사관이었다. 전투 중에 급히 매장해 버렸던 병사들의 시체를 파내는 일도 했다. 그는 또 전사자들이 남긴 소지품을 정리해서 그들의 유족에게 보내 줘야했다.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지나 않았을까 혹시 낳았다는 편지만 받았지 아직 본 적도 없는 16개월 된 갓난 아들을 영원히 안아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는 극도의 번민으로 거의 미치광이가 되었고 기진맥진하여 어린애처럼 흐느껴 울었다.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 불안이 군(軍)의 진료소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조심스럽게 그를 진찰하던 어느 군의관의 말이 일생의 전기(轉機)가 된 것이다. 그는 그날부터 이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한 번에 한 알의 모래… 한 번에 한 건의 일…" 이 충고로 해서 그는 전쟁 중에 구원을 받았으며 현재 조그만 한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이 충고가 생활의 지침이 되고 있다. 전쟁터에서와 마찬가지로 할 일이 잔뜩 밀려 있으나 그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하루하루의 충실감이야말로 인간을 실행력 있고 판단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戰時)나 평화시를 막론하고 현명한 사고(思考)와 무익(無益)한 사고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즉 현명한 사고는 원인과 결과를 다루며 논리적이고 건설적인 계획과 통한다. 그 반면에 무익(無益)한 사고(思考)는 흔히 긴장이나 신경쇠약과 통한다. 오늘날 병원 침대의 절반이 축적된 과거와 불안스런 미래에 억눌린 사람들로 차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오늘에 살라!"는 선현(先賢)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하루하루를 충실하고 밀도 있게 살아간다면 행복하고 유익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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