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이틀째 비가 내린다. 아주 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디를 돌고 돌아오느라 이리 애를 태웠던가. 늦게라도 이렇게 내려준 것이 고마운 마음이다. 매년 7월 첫째 주말이면 남편 고향에서는 1박 2일로 향우회가 열린다. 공교롭게 내 고향 향우회도 같은 날이다. 마을을 떠나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환한 얼굴로 고향을 찾아 모여든다.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활기를 띈다.

 배배 타들어가던 작물들이 오랜만의 단비에 기지개를 켜며 너풀너풀 깨어나고 있다. 바싹 말라 있던 동네 어르신들의 마음에 촉촉이 생기가 돈다. 골골이 접혀 있던 주름살 속에서 배어나오는 흐뭇한 미소는 그 자체가 고향이요 어버이 모습이다. 정겹고 푸근하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이게 누구여, 아무개 아녀? 잘 왔네, 잘 왔어" 누구네 집 자손 따지지 않고 하나같이 내 자식인양 손잡아 끌어들이는 어르신들의 얼굴이 마냥 너그럽다.

 마을회관이 모처럼 왁자글하다. 활기 넘치는 웃음소리에 호기 부리던 빗소리가 질금질금 꼬리를 내린다. 톤을 낮춘 빗소리와 해물야채 지짐이 익어가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고 고소하게 번져간다. 바깥마당에는 천막을 치고 야외용 탁자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주로 남정네들이 자리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판을 벌인다. 홀짝홀짝 소주잔을 부딪치며 힘들게 살림을 일군 얘기며, 잘 익은 수박 맛처럼 달고 시원하게 자수성가한 이야기꽃이 저녁답으로 향한다.

 마당 한켠에서는 한국식 보양식이 푹푹 익어간다. 삭막한 도회생활에 지친 이들의 몸과 마음을 보양해 주기 위함이다. 젊은이들은 고향을 지키느라 허리가 꼬부라든 어른들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대접에 신바람을 낸다. 쏟아지는 땀방울이 단비만큼이나 귀해 보인다.

 둘째 날은 내 고향으로 들어섰다. 남편 동네와 이웃이다 보니 풍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는 민물 매운탕이 올해 새로운 메뉴로 등장했다. 매운탕을 대하니 마치 천렵 나온 느낌이 든다. 지금처럼 번듯한 마을회관이 없던 그 시절 향우회는 어쩌면 냇가 나무그늘 아래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솥단지 걸어놓고 물고기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온 동네 사람들이 더운 여름을 나고 친목을 다졌으리라. 이렇듯 해마다 7월이면 서울로, 부산으로 떠나 살던 젊은이들이 먼 길 마다 않고 고향을 찾는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도 기꺼이 찬조금을 들고, 부모님도, 농토도 남아 있지 않은 동네를 찾아오는 마음은 무엇일까.

 본향으로 돌아가고픈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바다로 나가 살던 연어가 산란 때에는 자신이 태어난 모천을 향해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마음이리라. 온 몸이 찢기고 때로는 목숨을 잃을지라도 태어난 곳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하려는 연어의 본능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지 싶다. 고향을 찾았던 이들은 감자며 푸성귀들을 찔러주시는 어르신들을 뒤로 하고 다시 너른 바다, 삶의 터를 향해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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