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김진웅 수필가]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란 말처럼, 얼마 전 전북 남원시 대강면 문덕산과 약수정사를 다녀왔다. 전라북도 남동부에 있는 남원 지역은 백두대간 지리산 능선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부근을 흐르는 남녘의 젖줄인 섬진강 주변의 푸근한 경관에 마음도 넉넉해지고, 암벽과 암봉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하는 문덕산, 아기자기한 재미와 함께 소담함을 느끼는 문덕봉(598m), 소금배와 얽힌 전설이 있는 고리봉(708.1m)은 조망도 좋지만 거대한 바위병풍처럼 웅장한 산세를 과시하고, 소나무가 울창한 오밀조밀하게 펼쳐진 산의 능선이 이어져 있다. 암벽의 소나무는 서있다기보다 매달려 있지만, 환경을 원망도 비관도 하지 않고 꿋꿋하고 묵묵히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다.

 문덕산 약수정사가 있는 마을은 처음 와 본 곳인데도 낯설지 않다. 충북 단양의 대강면이 먼저 생각났고, 춘향골농협, 춘향골추어탕, 춘향골주유소 등 이름만 보고 들어도 마냥 정겹다. 오래 전에 광한루에 다녀간 생각도 났다. 조선시대의 재상 황희가 짓고 광통루라 했고, 세종대왕 때 정인지는 달 속의 선녀가 사는 월궁의 이름에서 광한루라고 지었다고 한다.

 약수정사에서 며칠이나마 마음을 비우고 성찰하고 사색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대웅전에는 다른 절에서는 보기 힘든 석불(石佛)과 천불(千佛)이 모셔져 있어 더욱 신심을 일깨워주었다. 대웅전 밖에는 범종각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한 산사를 지켜주는 풍경 소리가 마음을 비우며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귀엣말로 일러 주었다. 넓은 마당에는 백 살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벚나무가 봄에 다시 오라고 하고, 약수정사와 관련 있을 듯한 샘터에는 안다미로 아낌없이 따라주는 석상(石像)이 있어 나눔의 미를 배우고 있는데, 약수정사 유래비가 나를 불렀다.

 아흔아홉 골짜기라는 문덕산 아래 조용히 자리한 유서 깊은 고려시대의 고찰 만행사(萬行寺)는 여러 번의 변천을 거쳐 지금의 약수정사가 되었다고 한다. 옛 절터에는 삼성각만이 있었는데 만행사 중건에 뜻을 둔 이용수 스님께서 사지를 유지하다가, 보명보살이 인수하여 보살행을 닦으며 규모 있는 약수정사로 탈바꿈하여 한국불교 태고종 약수정사로 등록하였다. 1992년 7월경, 보살의 유업을 받아 혜정 스님께서 중창 불사에 뜻을 두고 불자님들의 돈독한 신심으로 1994년 3월 대웅전을 중창 복원하였다고 일러 주었다. 약수정사 위쪽두바리봉 부근에 신라시대 유적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좌상이 있다니 언젠가 찾아가고 싶다.

 오랜 가뭄 끝에 비를 맞은 갈매빛 초목들은 왕연하고 기운차 보였다. 한 가정이나 사찰이나 결코 저절로 된 것은 없다. 약수정사가 많은 변천으로 훌륭한 도량이 된 것처럼,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계곡을 흐르는 물처럼 살아야 하며, 만물은 많은 이들의 정성과 피땀으로 지켜지고 발전된다. 개인의 일에서부터 사회나 국가에 이르기까지 마음과 힘을 모아 부단히 정진할 때 보존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춘향골 여행에서 배울 수 있어 무척 의미 있고 보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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