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만의 수해' 청주 이재민 대피소

▲ 18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한 초등학교 강당 이재민 대피소에서 주민들이 컵라면으로 늦은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바닥 쪽잠에 컵라면으로 끼니 <BR>사흘째 공무원 그림자도 못 봐 <bR>"어디에 도움 요청하나" 막막

[충청일보 송근섭기자] "밤이 되면 대피소로 40~50명이 몰리는데 이불이 없어서 의자에서 쪽잠을 잡니다.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사흘째 공무원은 그림자도 안보이니 어디에 도움을 요청합니까."
 
18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한 초등학교 강당에서 만난 주민 전병호씨(52)는 상기된 얼굴로 울분을 토해냈다.

이 초등학교 강당은 지난 16일 290㎜가 넘는 폭우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의 임시 대피소로 운영되고 있다.

주민들은 낮에 각자 살고 있던 주택·상가 복구 작업을 하고 밤이 되면 눈을 붙이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딱딱한 강당 바닥에 깔고 몸에 덮을 것이라고는 얇은 담요 30여개가 전부다.

담요를 챙기지 못한 주민들은 의자나 바닥에 앉아 쪽잠을 자야 한다.

끼니는 사흘째 컵라면과 휴대용 즉석밥으로 때웠다.

강당에 있는 화장실에서 줄을 서서 고양이 세수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전쟁통 피난민을 연상케 한다.

김모씨(72·여)는 "여러 곳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불편하게 자니 건강한 사람도 병이 생길 것 같다"며 "칠십 평생 이런 일을 겪기는 처음"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주민들을 가장 서럽게 하는 것은 열악한 대피소 환경도, 무심한 하늘도 아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이다.

이 곳 대피소에는 수마가 휩쓸고 간 16일부터 사흘 동안 이재민 지원을 위한 행정기관의 방문이 한 차례도 없었다.

주민들은 가구별 피해상황 집계와 복구 지원 요청을 위해 이 곳 저 곳을 직접 수소문 해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도 책임 있는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한 주민은 "피해 신고를 위해 동주민센터를 찾아가니 '시청에서 해야 할 것 같다'고 하고, 시청을 찾아가니 '구청에 문의해 보라'고 하더라"며 "어떤 직원은 왜 피해물품 사진을 안 찍어왔느냐고 하는데 대피하기에도 바빴던 주민들에게 너무 과한 요구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은 "국민안전처에도 수해 지원 관련 문의를 했더니 '그 동네도 피해를 입었느냐'고 되묻더라"며 "어떤 동네는 높은 양반들과 공무원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다른 동네는 피해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주민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이날 오전에서야 청주시청 6급 팀장이 대피소를 찾아 향후 피해 지원 계획 등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명확한 지원·보상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책임과 권한이 있는 시장이 직접 와야 한다", "집 밖에 내놓은 가재도구를 훔쳐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경찰은 왜 안 오느냐"는 등의 불만과 하소연을 쏟아냈고, 해당 팀장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결국 이 날 오후부터 가구별 피해상황 전수조사가 시작됐지만, 주민들은 언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루아침에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허술한 이재민 대책과 늑장 지원에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병호씨는 "대피소에서 이틀 쪽잠을 잤는데 이제야 피해상황 조사를 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상인들은 다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소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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