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주룩주룩 장맛비가 간밤부터 내렸다. 비 때문인지 떠나는 이와의 이별 때문인지 평소에 잘 마시지 않던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을 내다보고 앉아 있었다. 커피가 맛있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들었다. 이층 휴게실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흠뻑 젖은 목련 공원을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천상으로 가는 계단처럼 운무가 산허리를 휘감으며 자욱하게 내려앉는다. 이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일층 로비의 풍경은 마치 공항 출국장 같이 부산하다.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이별을 하기 위해서 배웅을 나온 사람들처럼 슬프고 아쉬운 표정들이다.

 전광판에서는 떠나는 이들의 시간이 차례대로 안내되고 있을 뿐 돌아오는 시간은 안내되지 않고 있었다. 돌아올 수 없는 먼 나라로 영원히 떠나는 그런 공항 같았다. 떠나는 시간은 예고 없이 다가오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감당해야할 슬픔은 크기만 하다. 준비된 이별이라 해도 슬프긴 마찬가지다. 다시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슬픔의 깊이가 어떤 이별인지를 가늠케 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지금 누군가 머나먼 나라로 가는 길에 배웅을 나와 있는 중이다.

 지난 주일에 함께 찬송하며 예배를 보았던 교우님과 갑작스런 이별을 하고 있었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함께하며 찬송으로 명복을 빌어드리고 남은 가족을 위로해 드리는 일이었다. 내 설움에 우는 슬픈 곡소리가 아닌 아름다운 찬송을 들으며 가시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으셨으리라,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발걸음 가벼이 떠나셨으리라. 한줌의 재로 만들어지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헌화 대에 누군가가 두고 간 꽃과 사연들을 찬찬히 읽어 보며 빗물 같이 눈물이 흐른다. 나와는 상관도 없는 어떤 이들의 슬픈 사연에 목이 멘다.

 십 여 년 전에 일이 생각났다. 친구가 꽃구경을 가자면서 나를 태우고 우암산을 돌아서 산속 어딘가로 접어들었다. 공원묘지 옆을 지나고 있었다. 오르는 산등성이에 꽃 잔디가 가득 피어 있었다. 그 꽃길이 끝나는 곳에 목련공원 화장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꽃구경 시켜준다고 데리고 나와서는 웬 화장장이냐고 따지는 나에게 묵묵부답으로 앞서 가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화장 진행 상황을 안내하는 전광판이었다. 이름 앞에 쓰인 화장 대기중, 화장 진행중 또는 화장완료, 그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있었다. 통곡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한줌의 재가 된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안고 오열하는 사람들의 슬픈 초상들이 나에게는 어떤 용기를 주고 있었다. 그래! 살아 있음만으로도 감사한 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든 잘할 수 있어 잘해낼 수 있어! 라고 나에게 외치고 있었다. 친구의 속 깊은 뜻을 알 수가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마음을 다잡고 가벼워진 내가 경쾌한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꽃이 어디에 있어?' 친구는 웃음으로 화답을 해주면서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었다. 오늘은 그 친구가 많이 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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