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호 청주시 청원구 세무과

[신상호 청주시 청원구 세무과 ] 태양빛이 무섭게 내리쬐는 6월 어느 아침이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세외수입 고지서와 지방세 고지서를 들고 구청을 찾아오셨다. 힘든 걸음을 떼어 구청까지 방문하신 어르신이셨다. "어르신, 어떻게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뭣 좀 알아보려고."라고 하시며 이야기를 꺼내신다. 어르신은 재산세에 대해 궁금하다고 하신다. 할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니 세금이 아니라 세금의 자료가 되는 내 땅, 내 집이 제대로 있는지 등이 궁금하신 것이었다.

 사실 어르신들이 재산세 고지서를 들고 찾아오시는 주된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세금이 많아 납부하기 힘들다는 것과 당신의 재산을 정확히 알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본인이 가진 재산의 종류나 평수 등이 변하지는 않았는지 알아보고 싶은 이유에서다. 이렇게 확인하지 않아도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데도 이렇게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도 있다.

 30여 분을 차근차근 설명한 뒤에 어르신을 돌려보내는 마음에 병환 중의 아버님이 생각이 났다. 어르신들의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아들 혹은 자손들에게 평생 쌓아 놓은 재산의 사리탑을 확인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우리나라는 아직 본인의 재산 현황을 실제적으로 상담해주는 창구가 존재하지 않아 비정상적으로 재산세나 세금고지서를 통해 과세의 적정성이 아니라 과세의 기초자료인 건물이나 땅이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서 덕수(황정민 분)는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과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무수한 어려움을 견디어 살아 나간다. 우리 시대를 살고 있는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에겐 결코 낯선 상황이 아닐 것이다. 어렵사리 마련한 집 한 채와 땅 한 떼기를 잊어버리기 전에 확인해 놓고 싶으신 노인세대의 행동 너머에 전쟁을 겪으며, 가난과 싸워가며 변변한 학력도 갖지 못한 채 자식들을 위해 맨발로 열심히 뛰었던 생존 전선이 어렴풋이 그려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요즘 뉴스를 보면 아직은 어르신들이 살아가기에 그리 녹록한 세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노인성 질환인 '치매'에 걸린 노인들의 국가책임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고 자식들이 제대로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지 못해 내 작은 재산이나마 지켜서 물려줘야 한다는 사명감 등이 여전히 노인들의 어깨를 누른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진 약자들에 대해 정부가 돌아봐야 할 것들을 통합적 시각에서 제공해주고 알려주는 곳이 생기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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