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물은 천연덕스럽게 흘렀다. 자전거로, 보행로에 쌓인 토사를 닦아내는 살수차가 보이고 수영교와 용평교는 평소대로 미끈한 기둥이 드러났다. 갈대와 억새가 길게 눕고 뿌리째 뽑혀 거센 물살에 이끌리다가 풀숲에 걸린 나무만 없었다면 무심천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불과 하루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다리의 경계선까지 물이 넘실거려 마음 졸였고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겁나게 흐르던 모습은 꿈결에 본 장면인가. 흉측한 수마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것이며 수재민의 망연자실은 어찌하란 말인가.

 22년 만에 물난리가 난 지난 16일. 그날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빗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휴일을 즐기던 날이었다. 오랜 가뭄 끝에 장맛비가 내리는지라 여러 날 내려도 마냥 좋았다. 홍수에 대한 예견은 전혀 없었다. 오전 6시 39분, 국민안전처로부터 문자가 왔다. '충북 진천 호우경보, 산사태, 상습침수 등 위험지역 대피, 외출 자제 등 안전에 주의하세요.' 라고. 청주시는 8시 16분이 되어서야 청주시 청원구의 북이면, 오창읍의 산사태 주의보를 보냈고 그 후 오후 1시 18분에 보낸 가경, 복대동 복구 안내문자까지 합해봐야 겨우 6건이다. SNS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재난에 대한 대비로는 참으로 야박한 조치였다.

 다음날 저녁, 물에 잠겼었던 장암동을 가보았다. 수상가옥 같던 집들은 다시 땅 위에 있었지만 한창 자라고 있던 벼와 농작물은 흙에 묻혀 스러지고 농로의 흙이 패어나가 언제 길이 내려앉을지 몰라 조심스러웠다. 1주일 후, 괴산지역을 갔을 때 그날의 홍수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폐허가 된 현장을 보며 새삼 실감했다. 민생을 외면하고 해외로 외유를 갔다가 도중에 하차하고 허리를 구부린 충북도의회 의원들의 모습만큼이나 참담했다. 막말, 거짓말, 거짓 뉴스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 말과 글의 홍수시대를 살면서 진짜 홍수가 나고 있는데 모두 무디어진 거다. 누구를 탓하랴. 필자도 그 시간에 한가롭게 빗소리와 커피와 휴일의 게으름 속에서 거듭되는 몇 개의 문자 알림을 받고도 고개를 갸웃했으니.

 복잡다단한 사람의 의식세계는 뜻밖에 외길이다. 외길에 빠지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는 고집과 우격다짐의 끝을 보고야 만다. 힘없는 정의를 감추기 위해 사회의 양극화 현상도 극심해졌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던 인간이 시간당 91.8mm, 하루 290.2mm 쏟아진 폭우 앞에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330mm의 강수량에도 끄떡없다던 우수저류시설이 설치된 청주의 개신지구와 내덕지구가 이번 폭우로 물에 잠겼다. 머리로 설치한 우수저류시설은 자연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학문과 지식을 앞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이번에는 어떤 사후약방문을 내놓을 것인가.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인간중심의 약방문이라야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