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올 여름은 때 이른 혹독한 가뭄이 농작물과 우리의 애간장을 바짝바짝 태우더니 갑작스런 물 폭탄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고 연이은 폭염으로 우리의 심신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마치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라도 해야 하듯이 날씨가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솔직하게 '서바이벌'이라는 표현이 우리에게 조금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고 경쟁하는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류가 생존의 위협에 맞서 진화한 과정이 '서바이벌'이었기에 우리가 지구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자연과 공존하고 협력해야 할 것인가? 또는 휴머니즘과 인류애를 어떻게 펼쳐야 할 것인가? 에 대한 긍정적인 전제가 주어진다면 그 자체를 애써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프랑스의 문면사가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는 그의 역저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의 중요한 유형의 하나로 경쟁을 말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우리가 하던 가위바위보 게임부터 엄청난 규모의 돈이 오고가는 프로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서바이벌을 위한 경쟁의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놀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며 생존을 고민하는 시대에 '서바이벌'은 그 자체가 현실의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서바이벌 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예컨대, 어려서는 좋은 성적을 얻어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대학 진학 후에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경쟁을 하며 취업 후에는 승진하고 살아남기 위해 경쟁한다. 다시 말해서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서바이벌 경쟁은 더욱 치열하고 무자비해졌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삶이 불확실해질수록 서바이벌은 어려워지고 경쟁은 뜨거워진다. 그럴수록 사회는 벌거벗은 욕망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적나라하게 사투를 벌이고 우리 사회는 정글로 변모해 간다. 대부분의 우리는 그런 정글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떡하든 생존해야만 한다는 욕망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남을 딛고 올라서야 한다는 '레드 오션' 성향이 농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염려해야 할 것 같다.

 문득 처절한 생존 실화를 그린 아론 랠스톤(Aron Ralston)의 책 《127시간》이 생각난다. 2003년 4월, 미국 유타 주의 한 협곡에서 바위에 오른 팔이 깔려 6일 동안 갈증과 추위에 싸워야 했던 한 청년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자르고 탈출하는 과정과 사투를 그린 이 이야기는 생존이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과 포기를 스스로 넘어서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어 위대한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미국 전역에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우리는 '서바이벌'을 위해 반드시 타인의 배제나 정복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서바이벌'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만약에 그 동안 '살아남기' 위해 타인에게 칼을 겨누었다면 《127시간》의 주인공처럼 이제 그 칼을 생존을 위협하는 자신의 결핍과 오만을 향해 써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무지하게 더운 이 여름에 우리 주변을 한 번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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