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여름의 한 복판이다. 한때는 가뭄에 따른 물 부족으로 걱정을 끼치더니 이제는 장마로 인한 수해로 또 다시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그래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연 속에 동화되어 운명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재력이나 논리에 상관없이 모든 걸 잘 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에 여행이라고 응답하였다고 한다. 복잡하고 번잡한 현대적 삶에 지친 사람들은 휴가를 떠나 산과 물이 있는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울창한 숲이나 한적한 물가에 자신만의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를 원하는 것이다.

종전에는 많은 부를 가진 사람이나 단기간에 큰 성공을 거둔 신흥부자들은 대도시와 휴양지 인근에 별장이나 저택을 마련하고 수시로 옮겨 다니며 휴가를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곳곳에 저택을 마련할 정도의 많은 재력을 갖지 못하여도 새로운 시스템과 사고의 전환으로 세상 이곳저곳에 각자 다른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휴가를 즐기는 방법이 다양하게 변하였다. 방 한 칸이나 집 한 채를 빌릴 수도 있으며 별장이나 시골 정원을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나라나 도시에 머물면서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처럼 그곳에서 삶을 즐길 수 있는 편리하고 재미있는 세상이다.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7월말이나 8월초가 되면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며칠 전 필자도 가족들과 함께 나름대로 긴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각자 일들로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오래전부터 준비한 덕분에 떠날 수 있었다. 두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어린 손자와 함께 가는 여행이라서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모처럼 온가족이 함께 떠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설레기도 하였다. 한 곳을 여행지로 정하여 긴 여정에서 오는 피곤함을 거의 느끼지 않고 가족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는 한 집안 가장의 입장에서 휴가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다른 이름이다. 가족들이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의미에서 보면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평소 손자가 유난히 잘 따르기 때문에 당연히 손자와 놀아주는 일은 주로 필자의 몫이 되었다. 그 대신 아내와 아들 며느리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여행지에서 맘껏 즐길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더불어 모처럼 손자와 함께 즐기는 시간을 독차지 하게 되어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최근 대통령이 앞장서서 여름휴가를 포함하여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정부는 휴가사용을 권장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이 규정대로 연차휴가를 쓴다면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휴가 경제학의 차가운 계산도 깔려 있는 것 같다. 공직사회의 휴가 사용을 지렛대로 하여 민간의 영역까지 확대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대다수 많은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장기간 휴가를 간다는 것이 주변 환경과 경제적 형편에서 보면 아직까지는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이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려는 열망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길을 떠나 종착점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만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삶을 제안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넘치면 해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너무 많이 해서 문제가 되는 사람은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행 일정이 길거나 짧거나, 거리가 멀거나 가깝거나에 상관없이 떠날 수 있는 여유로운 상상만으로 나름 의미가 있다. 출근길에 새까맣게 그을려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서 두 손을 모아 배꼽인사를 하는 손자를 꼭 안아주는 행복을 느끼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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