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오랜 봄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가슴에 쏟아진 물 폭탄의 여파가 참으로 크다. 늘 여름이면 되풀이 되는 장마 피해가 올해는 도를 훨씬 넘었다. 어마무시하게 물난리를 겪고 식겁해 있는 청주지역에 비해 입을 떼기가 민망하지만, 우리 진천지역 역시 크고 작은 피해가 적지 않은가 보다.

휴가까지 반납하고 수해 복구에 나선 공무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사회단체 회원들도 연일 수해 현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고온다습한 날씨는 가만히 들어 앉아 있어도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복구에 투입되어 땀 흘리는 사람들의 노고가 그 어느 때보다 귀해 보인다.

재난을 겪을 때마다 거대한 자연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나약함에 좌절하고 자조하기도 한다. 그래도 절망을 딛고 일어 설 수 있는 의지를 가진 것은 인간뿐이지 싶다. 땀으로 범벅이가 되어 복구 작업에 나선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곧 원상으로 복구되리라. 사람의 속성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극한 상황에서는 더욱 똘똘 뭉쳐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기지가 뛰어난 것을 봐 오지 않았던가.

큰 피해를 입히고도 장마전선은 아직도 쉬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한쪽에 도사리고 앉아 찔벅거리고 있다. 도대체 장마전선이란 어떤 녀석인가. 열대성 습윤기단인 북태평양 고기압과 해양성 한대기단인 오호츠크해 고기압의 경계면에 동서로 길게 형성된 세력이다. 주로 비를 지배한다.

두 기단의 세력에 따라 남북을 오르내리며 우리나라 날씨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우리는 한창 장마전선대를 걷고 있다. 이 장마전선과 태풍이 야합을 하면 더 큰일이다. 집중호우가 발생하고 홍수 피해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정분이 밤에 이루어진다면, 이들의 야합은 주로 장마 끝머리를 틈 탈 때가 많다.

‘장마’란 원래 ‘오란비’라는 예쁘장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오래를 뜻하는 고유어 ‘오란’과 물을 뜻하는 ‘비’가 만나 이루어진 순수한 우리말이란다.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의미한다. 여성적인 분위기에 정감이 간다. 장마라는 말이 일반화되기 이전 오란비로 불릴 때에는 왠지 그리 큰 피해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단순히 이름값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면 짐작이 가는 일이다. 자연재해니, 천재지변이니 하고 떠밀고는 있지만 시나브로 저질러온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한 인재가 얼마나 많은가.

푸르름이 가득해야 할 논과 밭은 어느새 비닐하우스로 하얀 바다를 이루었다. 땅이 온전히 하늘을 보고 숨을 쉴 수가 없으니 그 숨 막히는 열기를 이상기온으로 토해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논둑길 역시 흙길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어디 그뿐이랴.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공장이며 난개발, 도로 가득 메운 자동차의 매연, 열기, 어디 한군데 마음 놓고 생기로운 공기를 들여 마실 공간이 있던가. 사람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조건들에 외려 사람이 말려들고 있는 느낌이다.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서 자연친화적이고 근원적인 자연의 이치에 더 마음 쓸 때인 듯싶다. ‘생거진천’ 브랜드가 바로 참살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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