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제19대 대통령 취임 연설문에 나오는 말이다. 몇 번을 듣고 또 들어도, 읽고 또 읽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대통령께서 취임하시던 날, 이 말을 들으며 '정말 그런 사회가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간절히 소망한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 몇 마디에 불과한 이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왜 일까? 문장이 수려해서가 아니라 새 정부의 비전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시절에 미국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문 내용 중 일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이 짧은 문구가 그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었던 것은 국가가 존립하는 이유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취임사에서 언급한 평등과 공정, 정의라는 말은 우리에게 전혀 생소한 말이 아니다.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이기도 하고, 공동체가 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많이 가진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도 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늘 부족하고 불만스럽기만 한 것이다. 그러니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말이 주는 감동이 얼마나 컸을까?

필자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몇 차례 사회복지 업무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분은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재활과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였다. 또 어떤 청소년들은 가정적 결함으로 불우한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고 방황하기도 했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일자리를 찾아 인력시장을 기웃거리고, 새벽부터 폐지를 줍는 어르신도 보았다.
 
진정한 기회의 평등은 어떤 것일까?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건장한 어른과 아이가 똑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것을 평등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건강한 사람과 장애가 있는 사람이 똑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것을 공정한 게임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 장애인, 결손가정, 노약자, 빈곤층 등은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누군들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신체적 장애, 불평등한 교육기회, 부의 세습, 계층 간의 과도한 소득 격차 등으로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 없이 진정한 사회통합과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삶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공감대의 형성이 절실하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내 이웃이 편안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보고 그들이 보호받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성장만큼이나 잘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기회의 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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