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지난번 칼럼에서 학생들을 인솔에서 일본 아마쿠사에 홈스테이를 다녀온 내용을 소개했다. 종일 학생들이 호스트패밀리와 교류하던 토요일, 모처럼 난 자유시간을 이용해 시내버스를 타고 아마쿠사섬 동북쪽 끝에 있는 레이호쿠마치(北町) 시키(志岐)라는 부락을 방문했다. 400년 전 그곳에서 살았던 어떤 이의 발자취를 꼭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가운 비센테, 임진왜란 때 한양을 점령 중이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에 의해 일본으로 연행되었을 당시 그는 13세의 소년이었다. 1592년 말 그는 고니시의 영토였던 시키로 끌려가서 그곳에 있던 천주교의 세미나리오(신학교)에서 베드로 모레혼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루이즈메메디나 신부에 따르면 비티칸에 보존된 자료에는 쥴리아 오타, 박마리나, 타케야 코스메 등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의 이름이 곳곳에 보이고, 그밖에 많은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의 행적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장성 하고나서 가운 비센테는 마날라, 북경 등지를 돌아다니며 천주교의 포교를 위해 평생을 바쳤고 마지막에는 체포되어서 1626년 나가사키에서 화형을 받고 순교했다. 1867년 로마교황 피오10세는 조선 최초의 예수회 전도사였던 그에게 복자의 칭호를 주었다.

 기록에 보면 당시 나가사키는 조선에서 잡혀온 피로인들로 넘쳐났고 그들을 인신매매하러 모여든 포르투갈 상인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조선에 건너가 마을 마을을 돌아다니며 죄도 없는 조선인을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외국 노예상인들에게 팔아넘긴 일본인..., 지금 이 사실을 아는 일본인들이 얼마나 될까?

 한국에서는 보통 1784년 북경에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을 천주교 신앙의 효시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그 180년도 전에 일본에서 이미 조선인들이,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수백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나온 것이다. 그뿐인가. 당시 나가사키 외곽에는 1610년에 조선인 신자들이 세운 "산로렌조교회"라는 성당까지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가 없다.

 내년 나가사키, 아마쿠사의 천주교 유적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예정이라고 한다. "설사 아마쿠사의 천주교 관련 유적들이 세계유산에 된다 한들 그것이 일본인 천주교 역사에만 국한된 것이라면 그 의의도 가치도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유적, 경관, 자연 등, 인류가 공유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보전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지 않으려면 규슈 서부지역에 남겨진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의 발자취도 반드시 조명해야 할 것이다. 아마쿠사시 담당 공무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여러 번 이 점을 강조하고 돌아왔다.

 그날 시키에서 가운 비센테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400년 전 수기한 운명에 이끌려 일본에 오게 된 조선인들의 삶은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들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에서 인정을 못 받고 잊혀져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종교, 학계, 행정, 모든 분야의 양식과 선의를 모아서 더 늦기 전에 그들에 대한 발굴, 조명 사업을 전개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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