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두 손을 꼭 잡았다. 손끝에 봉숭아 꽃잎이 내려앉았다. 무채색의 매니큐어를 덧발라 반짝이는 어머니의 손이 사랑스럽다. 수줍은 미소가 가득한 표정도 주홍빛 봉숭아꽃 색이다. 유년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는 새벽부터 들에 나가셨다. 그래선지 나는 어머니가 들에 나가지 않는 비 오는 날이 좋았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그릇을 만지는 소리도 정겨웠다. 애호박, 감자, 양파를 채 썰고 부추를 넣어 전을 부치는 냄새는 군침을 돌게 했다.

 수제비를 한 솥 끓여 집에 오는 손님들도 한 대접씩 드시게 했다. 상을 물리고 나면 옥수수를 쪄 한바구니 방으로 들여보내 주고 며칠째 내가 조르던 일을 하셨다. 마당가에 봉숭아 꽃잎을 따서 손절구에 찧으셨다. 내 손톱에 얹혀놓고 비닐을 씌우고 꾹꾹 눌러 무명실을 칭칭 감아 주었다. 열손가락을 묶은 채로 설풋한 잠을 자고 나면 봉숭아는 어디로 갔는지 손끝은 팥죽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머니의 손도 움직일 때마다 팥떡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나흘은 지나야 주홍색으로 자리를 잡았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 손톱은 점점 봉숭아물을 밀어내고 가을쯤에는 초승달이 되었다. 소녀적엔 어서 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때까지도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나를 이어주던 봉숭아물은 어머니의 유년시절에는 당신의 어머니와 자매들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끈이 되었을 것이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에도 까르르 웃으며 추억을 만들었지 싶다. 그런 추억을 요즘은 문구점 가판대에서도 만날 수 있다. 봉숭아를 키우기 어려운 도시에서조차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게으른 탓인지 쉽사리 봉숭아물을 들이지 못한다. 올해도 구순의 어머니가 노인대학에서 곱게 물들여 온 손톱을 보면서 여름의 낭만과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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