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주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하는 모리스 드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 1876-1958)전을 보았다. 이제까지 이 화가의 작품을 특별히 주목해보지 못했던 터라 8월 20일 전시가 끝나기 전에 볼 기회가 생겨 설레며 전시장을 찾았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많은 풍경화를 둘러보는 동안 드는 첫 인상은 그림이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풍경을 그린 그림 소재도 평범하고 약간 어두운 톤의 색조나 두껍고 거친 붓 터치도 단순하고 평범해보였다. 그런데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다시 한 번 둘러보고 그리고 미술관에서 나와서 찬찬히 음미해보는 동안 점점 내 마음에 강하게 느껴지는 깊은 인상은 거짓이 없다는 점이다. 그림을 통해 진실함을 전하고자 한다고 말한 화가의 고백처럼 그의 작품은 특별함 대신 자기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끊어내고 화가 자신이 느끼는 것만을 오롯이 담아내고자 한다.

 그도 처음에는 고호나 세잔에게서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들인 세잔의 시기 그림은 얼핏 보면 세잔의 풍경화나 정물화로 착각할 정도로 색상이나 구조가 세잔 그림과 느낌이 비슷하다. 하지만 이후 다른 화가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내면의 진실을 추구해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린 작품들은 단순하고 평범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번에 감탄 할 독창성이나 아름다운 색상, 독특한 구성, 진귀한 소재나 압도적인 웅장함 혹은 놀랄만한 정밀함 이런 모든 '뛰어남'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에서 뿜어 나오는 정직함에서 숙연한 감동이 느껴졌다.

 순전히 자신의 본능에 순종하는 데에는 '전쟁터에서 영웅으로 죽는 것만큼이나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 블라맹크의 표현은 다른 사람이 이루어놓은 모든 관습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한 자기 몸부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보여준다. 그는 새로운 소재나 기교를 추구하는 대신 더 깊은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풍경에 담아내고자 한다. '풍경이란 영혼의 상태'라고 하였던 블라맹크는 단순하고 평범한 비슷한 풍경을 반복적으로 파고드는 속에서 점점 더 과감하고 두꺼운 물감의 자유로운 터치로 '영혼의 강렬함'을 표현해간다.

 블라맹크는 평생 그림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과 작품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적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모든 그림 곁에 그의 글에서 발췌한 문장들이 적혀있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한 구절은 "내 그림이 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내가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겨울 혹은 여름 풍경, 정물, 빵 조각, 테이블 위의 물병, 꽃다발들을 그려도... "이것은 내 것이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적힌 문장들 안의 "이것은 내 것이야"라는 문구이다.

 아주 간단한 문장이지만 여러 가지 표현이 있을 수 있어서 불어원문이 궁금했는데 마침 전시도록에 원문이 실려 있어 찾아보니 "Ca, c'est moi."라고 적혀 있다. '그게 바로 나다'라는 단순하고 평범한 한 마디에 자기 내면을 정직하게 그리고자 평생 멈추지 않았던 화가의 처절하고 집요한 투쟁의 무게가 담겨 있다. 쉽고 빠른 놀랄만한 결과에의 유혹과 강박을 뿌리치고 '바로 나'라는 진실을 바라볼 용기를 간구해본다. 그것이 말 그대로 평범함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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