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광복 72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 사회는 분명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정상을 향해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다. 그것을 거꾸로 돌리려는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는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겨울 분명히 배웠다.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사과하고 위로하고 대책을 약속한다. 정계는 물론 해당 분야 지식인들조차 합당한 이유로 반대하는, 잘못된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후보 임명에 대해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사과하고 임명을 철회한다.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찾아 선조의 공을 치하하고 거기에 합당한 예우를 약속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 준다. 이런 일들은 일국의 지도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덕치다.

정권이 바뀌고 100일 동안 다양한 목소리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다양성을 수용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었다는 청신호다. 육군 대장 부인의 노예사병 사건, 대기업 회장의 운전수 갑질 사건, 하위자에 대한 상위자의 성폭행 사건 등 작금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은 그간 억눌려 살아온 사회적 약자들의 울분의 표시다. 갑자기 둑이 터진 듯하여 사회가 너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 사회에서 다양성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다양한 생각을 하고 그것을 유무언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심장이 뛰고 있는 건강한 사회라는 증거다. 모두의 생각이 같고 모두가 한 목소리라야 한다는 획일적 개념으로 저질러진 블랙리스트 사건은 우리 사회를 퇴보시켰다.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고, 모든 이들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보고 싶은 그림이나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깡마른 몸으로 용산역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일제 동원 ‘강제 징용 노동자상’, 시내버스 안에 앉아 있는 ‘소녀상’, 아흔에 가수로 데뷔하여 꿈을 이룬 ‘위안부 할머니’, 전국의 73개 소녀상을 모두 화폭에 담는 것을 목표로 소녀상을 그리는 ‘대학생’. 이들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겠지만 그 존재 자체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지금 한국은 블랙리스트로 문학인들을 옭아맨 폐쇄적 사회에서 우수도서 선정의 심사위원과 심사평이 공개되는 투명한 사회로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변화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라가 바로 서려면 주인인 국민이 현명해져야 한다. 언론이 매일 생산해 내는 수천의 정보들을 선별하는 안목이 절실히 필요하다. 시비를 분명히 가리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민중만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국민이 깨어 있을 때 마침내 신뢰받는 뉴스 채널이 생기고, 언론은 또 언론인은 본연의 의무에 충실할 것이다. 건강한 언론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천이고, 각각의 민초가 갖는 작은 자각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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