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거리를 나서면 건물만 빼곡하다. 요즘은 건물주를 조물주보다 위인 갓물주라 부른다. 사람보다 물질이 우선이다. 그럴수록 사람과 사람사이는 점점 멀어져간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문득, 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어디에 두고 온 걸까? 요즘 살충제 계란 파문으로 서민들의 밥상이 어지럽다. 좁은 장소에서 닭을 키워 경제적인 효과를 보자고 한 것이 국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되었다. 물질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계란 몇 개와 토담에 열린 호박하나 뚝 따서 그 토담위로 건네주던, 비록 작지만,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사랑을 익혀가던 시절이 있었다.

 정순인 매일 십 여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산머루 익어갈 때면 종성인 시집간 누나를 기다렸다.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뛰다보면, 발에 땀이 나서 검정 고무신이 벗겨진다. 발바닥에 흙을 묻힌 뒤 고무신을 신고 달려간다. 기다리던 누나가 오지 않았어도 부뚜막에 걸터앉아 보리밥에 물 말아 먹는 무장아찌가 달달해서 좋다. 오후 한나절! 검둥이가 팔자 좋게 낮잠을 자던 마을 고샅, 종성이가 달리고 그 뒤를 따라 금도, 정순이가 달렸다.

 배미실재에 걸터앉아 졸던 뭉게구름도 덩실덩실 따라간다, 얼굴에, 손에 옷에 흙물이 들어도 좋다. 한 줄기 바람과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높아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따라 숲이 자라고 희망도 자랐다. 어떠한 힘으로도 변질 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자연이다. 세월 속에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우리는 변함없이 사랑의 빛에 가득 채워져 있다. 이제는 모두 같이 가야하는 삶이다. 우리 하나하나가 조금씩만 내려놓으면 함께 걸어가는 길이 모두의 꽃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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