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어김없이 휴가철이 왔다. 지난해부터 휴가철만 되면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손자다. 출발한다는 전화를 받고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자 머지않아 도착을 했다. 딸과 사위는 뒷전이고 손자를 번쩍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조용했던 집안이 손자로 인해 웃음소리 가득하다. 한 참을 놀더니 밖으로 나가자는데 막상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문득, 아이들 키울 때 갔던 청주국립박물관이 생각나 거기로 갔다.

집 가까이 있지만 오랜만에 와 보는 박물관은 날씨가 더워서인지 손님이 많지 않다. 어린이 박물관이 따로 있어 영유아 체험실로 들어가니 볼거리 체험거리 등이 많다. 키즈카페처럼 된 곳에서 손자는 마냥 신나게 뛰어 다닌다.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녀석으로 필자도 덩달아 신이 난다. 옆에서 놀고 있던 다른 아이가 넘어지자 ‘괜찮아?’ 하는 손자가 기특하기 그지없다. 벌써 이렇게 많이 자랐나 싶다.

박물관을 나와 청주랜드로 가면서 하늘에 떠있는 낮달을 보고 “달이 쪼개졌어” 라고 말한다. 반달을 쪼개졌다고 표현하는 앙증맞은 입이 너무 사랑스럽다. 훗날 우리나라에 노벨문학상을 안겨주는 문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로 마냥 기분이 좋다.

비행기, 기차 등 놀이기구를 타면서 마냥 신나하는 손자를 보면서 이것이 행복이지 싶다. 손자 덕분에 난생 처음 회전목마를 다 타봤다. 꿈같은 시간, 솜사탕 같은 달콤한 시간이 지나고 휴가일정을 마친 딸 내외가 가고 나니 집안이 텅 빈 것 같다.

아직도 집안 구석구석에서 손자의 재잘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이런 손자가 너무 보고 싶어 지난 광복절을 이용해 퇴근 후 서울로 내달렸다. 올라가는 내내 비가 내리는데다 날이 어두워지자 퇴근하는 차로 길이 많이 막혔다. 평소 같으면 한 시간 반이면 가는 거리를 세 시간을 넘게 도로에서 보냈지만 손자를 만나러 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피곤치 않았다. 잠자기 전에 얼굴을 봐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딸네 집에 도착하니 다행히 손자는 자지 않고 반가운 얼굴로 ‘할머니’ 하며 필자의 가슴에 폭 안긴다.

흔히들 손자 사랑은 짝사랑이라고들 한다. 나 홀로 가슴 설레는 짝사랑이어도 좋다. 사랑 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 좋고, 고 작고 예쁜 입으로 말을 배워 ‘외할머니’라고 불렀을 때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던가. 엊그제 신생아 바구니에 담겨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말을 배워 전화통화를 할 수 있게 되니 너무 행복하다.

필자의 짝사랑이 될지도 모를 손자이지만, 할머니라는 말을 처음 듣게 해준 첫사랑 같은 아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박 두순 동시작가는 ‘아가의 존재는 가족을 한데 묶는 강한 끈’이라고 했다. 필자는 이 첫사랑과 오래 사랑하고, 설렘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얼마 전엔 아무도 모르게 첫사랑 이 아이의 이름으로 통장도 하나 만들었다. 10년 후 둘이 멋진 여행을 가기 위해서다. 할머니와 손자의 여행,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설렌다. 퇴직 후 손자와의 여행을 꿈꾸며 사는 초가을, 볼을 스치는 바람 끝이 벌써 선들선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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