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우리 부부는 대화가 필요해." 결혼한 지 23년 된 내가 아내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감사한다는 말은 신혼 때 즐겨 사용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에 머물 때는 서재에서 홀로의 자유를 즐기거나 침묵의 시간이 더 많다. 아내는 이러는 내게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교감하자고 한다. 부부의 사랑을,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만들며 빚으면 좋겠다며 주변을 서성거린다.

 그럼에도 나는 말문을 굳게 잠근다. 아내는 가정의 일, 회사의 일, 세상의 일을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 하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이 다르다는 명분으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입안에 거미줄 치겠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대화보다는 조용한 실천이 중요하다며, 이 험난한 세상 여기까지 달려온 게 다행이지 않느냐며 으스대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마음을 나누는 것이 카톡의 가족 단톡방을 통해 <딸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꾸준히 보내는 것이다. 세 명의 딸과 아내에게 사랑과 소소한 풍경과 꿈과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요즘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나의 글은 길고 자식에 대한 염원은 짙으며 메시지가 주는 에너지가 강렬하다보니 딸들이 심리적 부담을 느끼면서 카톡조차 반응이 시원찮다.

 천주교에서는 사제가 되기 위해 10년을 준비한다. 이것도 모자라 사제가 된 후에도 매년 교육을 받으며 사제로서의 책무와 마음가짐을 다지고 또 다진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4년의 교육과정과 교생실습과 임용고시라는 험난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전문 직업을 갖기 위해서도 사전에 충분한 학습과 훈련과 준비과정에 필요하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단계별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던가. 그렇지만 결혼을 위해서는 특별한 준비기간이 없다. 결혼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전부다. 부부의 일, 가정의 일이 평온치 않아 파혼으로 치닫거나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되는 것이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나의 삶은 치열했다. 새벽에 출근하고 늦은 시간에 귀가하며 주말이나 휴일도 반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며, 경쟁에서 뒷걸질치면 큰 일 나는 것으로 알며 달려왔다. 삶의 향기를 외치고, 문화적인 일상을 주장하지만 정작 나 자신부터 워커홀릭이다.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낯설다.

 그래서 새로운 대화법을 찾았다. 바로 문화와 함께하는 대화다. 온 가족이 영화를 보거나 틈틈이 공연을 본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도 만들어 본다. 부부가 함께 손잡고 길을 나서고 쇼핑을 함께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손으로 편지를 쓴다. 편지는 마음과 지식과 생각이 조화로운 정제된 언어다.

 대화를 위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함께하며 하나의 목적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굳이 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베토벤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 속에 숨어 있는 침묵을 찾기를 바랐다. 사람의 소리, 자연의 소리, 예술의 소리 그 속에 숨어 있는 침묵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고귀한 대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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